앵커 : 김정은 당 총비서 집권 1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 여성들은 여전히 중국의 인권침해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중국행을 선택하는 북한 여성들은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를 당해왔고 그런 상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서울의 목용재 기자가 중국으로 내몰린 북한 여성들의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16세의 나이로 중국으로 나가야만 했던 여성 탈북민 김향(가명, 23, 2017년 입국) 씨. 김 씨는 지난 2016년 북중을 오가며 생업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북한에서의 벌이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 씨는 9개월 여 간 중국의 돼지, 인삼농장 등에서 일하며 하루 50위안을 벌었습니다.
김 씨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낯선 중국에서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무서움보다 북한 내에서의 삶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김향 씨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저만한 아이가 중국에서 일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미성년자로 보호 받아야 할 나이였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잖아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불법으로 중국에 일하러 간다는 거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죠. 그렇지만 그 때는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김 씨는 인신매매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북한 여성들의 경우 “힘들게 일할 필요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게 김 씨의 말입니다.
중국 고용주의 노동착취와 인신매매 위협에 시달리는 북 여성들
남성 탈북민 최단(가명, 21, 2020년 입국) 씨는 자신의 누이 2명과 어머니가 생활고로 인신매매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호소했습니다.
최 씨의 첫째 누이는 2012년 경 중국의 유복한 집안의 양녀로 입양될 것이라는 말에 속아 중국인에게 팔려갔고 어머니와 둘째 누이는 2014년 경 경제적 목적으로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곧바로 중국인에게 팔려갔습니다. 인신매매의 대상이 된 최 씨의 누이들은 모두 16~17세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탈북민 최단 씨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중국 내) 직장 생활 보다는 그냥 시집가서 잘 살겠다는 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는 그 때 시집가서 (둘째) 누나랑 같이 살겠다는 결심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브로커가 누나를 어머니 품에서 살지 못하게 하고 팔아버린거죠.
이어 최 씨는 “어머니께서 첫째 누이를 중국 가정의 양딸로 보낸 것은 누이만이라도 중국에서 잘 살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머니, 누이들과 연락이 끊긴 최 씨도 결국 2017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탈북해 중국의 식당에서 2년여 간 근무했습니다. 이 식당에서 40대, 60대의 탈북 여성들과 함께 일한 최 씨는 탈북민들에 대한 중국 고용주의 노동 착취가 심각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최 씨가 고용주로부터 약속 받은 임금은 한 달에 2300위안.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중국인의 절반수준이었고 함께 일했던 탈북여성들의 임금은 이보다도 더 적은 1600위안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약속 받은 임금조차 숙식, 교육비 등의 명목으로 떼이며 받지 못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강도 높은 노동에도 시달렸습니다. 60대의 탈북 여성의 경우 나이가 많고 느리다는 이유로 더 긴 시간동안 근무를 해야 했다는 게 최 씨의 증언입니다. 휴일은 중국의 춘절 연휴, 닷새뿐이었습니다.
최 씨는 이 같은 노동착취에도 단 한마디 항의도 못했습니다. “공안에 신고하겠다”는 고용주의 협박 때문입니다.
탈북민 최단 씨 :저희는 의지할 데가 없고 그리고 일할 데가 그 식당 밖에는 없었어요. 그러니까 저희를 그냥 자기(고용주)가 시키고 싶은데로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육체적으로 힘들고요. 설날 닷새 휴식하고 그 다음부터는 휴일이 없어요. 그냥 식당, 숙소, 식당, 숙소를 365일 반복해서 다니는 거죠.
탈북민들에 대한 중국 고용주들의 노동착취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09년 탈북해 현재 한국에서 북한 경제 상황 전반을 분석하는 민간 단체, NK투자개발을 운영하는 탈북여성 강미진(54, 2010년 입국) 대표도 탈북 초기 중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9년 탈북 직후 중국의 한 요양원에 취직한 강 대표는 한 달 임금 100위안으로 고용됐다가 인신매매의 위협을 느껴 한 달여 만에 요양원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급여는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중국 내 탈북민들의 또다른 고충은 급여를 보관할만한 수단이 없다는 겁니다. 고용주들은 이를 이용해 급여를 대신 보관해주겠다고 하고 월급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강 대표의 경우 중국 지인 계좌에 급여를 맡겼다가 이를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탈북민들은 이럴 경우 대개 자신의 돈을 되찾지 못합니다.
강미진 NK투자개발 대표:지금도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탈북민은 (중국에서) 집도 없고 나라도 없습니다. 안 받아줘요. 한국 외에 3국에서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이런 우리같은 사람들을 보호해줄 사람은 한 곳도 없어요. 돈 안 주고 부려먹기 좋죠.
북 여성들 , 왜 인신매매에 내몰리나?
북한 여성들의 경우 가정경제 활동에 적극적이고 북한 남성들의 경우 직장에 소속돼 다른 경제활동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북한 여성들이 중국 내 구직활동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특히 중국 내에선 북한 여성들에 대한 수요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인신매매 위험에 노출됩니다. 일부 브로커들이 북한 여성들을 사업체에 연결해주지 않고 중국의 미혼 남성들이나 유흥 업소 등에 팔아 넘겨 큰 이익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탈북민 구출활동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 북한 여성들은 한국 돈으로 적게는 300~500만 원, 즉 미화 2400~4000달러, 많게는 1000만 원, 즉 미화 8000달러에 팔려나갔습니다. 젊고 외모가 준수할수록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고 합니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 :지난 2018년 음성적인 채팅방으로 팔려간 10대 소녀를 구출했습니다. 업소에 팔려가는 도중에 구출했는데요. 팔린 금액보다 돈을 더 지불했습니다. 한국돈 1200만 원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구출해서 현재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다만 중국 내 탈북민 구출사업을 벌이는 익명의 한 활동가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코로나19 상황으로 중국으로 나오는 탈북민들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인신매매 자체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이번 취재에 응한 탈북민들은 경제적 어려움, 더 나은 삶을 위해 국경을 건넌 사람들이었습니다. 탈북을 고려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공통점은 북한 내 각박한 생활과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중국으로 내몰려졌다는 겁니다.
탈북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한국 정부 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김정은 당 총비서 집권 초기인 2012년, 탈북민들의 탈북동기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인 53%를 차지했던 응답은 ‘식량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이었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란 응답은 19%를 차지했습니다.
약 10년 후인 지난 2021년 조사된 탈북민들의 탈북동기도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22%의 응답자들이 ‘식량이 부족해서’라고 답했고 ‘가족에게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주려고’,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란 응답도 각각 11%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인신매매와 노동착취 등 각종 인권침해 환경에 노출되는 셈입니다.
북한 여성들과 탈북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이한별 소장은 생존을 위해 인신매매를 각오하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여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장은 “인신매매로 팔려갔다가 도망친 후 북한으로 돌아온 여성이 중국으로 시집가기 위해 다시 탈북한 사례도 있다”며 “북한에서 궁지에 몰린 여성들이 인신매매 등에 어쩔수 없이 내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자 목용재,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