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새해 첫날 말 타고 사진 찍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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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한국에선 음력 설을 크게 쇠기 때문에 1월 1일 새해에는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떡국을 끓여 먹고, 한 해 이루고 싶은 계획 등을 세우며 하루 휴식을 취합니다. 북한에서는 1월 1일이 되면 장마당 주변에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이게 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면서요?

손혜민 기자 :네, 그렇습니다. 북한 당국이 음력 설을 공휴일로 정하고 크게 쇠도록 장려하고 있지만, 아직 북한에서는 새해 첫날 양력 설에 의미를 두고 있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새해 첫날이면 가정집마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문화도 이 때문입니다. 보통 소득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유 있는 주민의 경우 장마당이나 백화점에서 TV나 녹화기 등 가전 기구를 사서 집에 들여놓거든요. 그러면 집안 분위기가 새롭게 바뀝니다.

또 장사하는 아내들은 남편과 자식의 새 옷을 사서 입혀 새해 첫날이나 첫 출근하는 날 입고 직장이나 거리에서 자존감을 높이기도 합니다. 돈이 없는 아내들은 하다 못해 가격이 눅은 양말이라도 사서 자식에게 주거든요. 이 때문에 새해 첫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 옷을 입고, 새 양말이나 새 신을 신고 사진을 찍으려는 아이들과 가족, 이들을 기다리는 사진사들의 풍경입니다. 평일에는 사진관이 따로 운영되고 있지만, 새해 첫날에는 사진사가 서는 장소가 사진관입니다.

새해 첫날이면 대도시는 물론, 중소 규모 도시에도 장마당 주변과 경관 좋은 공원, 도서관, 역전 일대가 사진관이 되는 건데요. 사진사들이 줄을 서서 있는데, 손님들은 누구에게 갈까요. 당연히 눈에 띄는 ‘광고’를 갖춘 곳으로 갑니다. 사진사의 옷차림도 일종의 ‘광고’가 되기 때문에 새해 첫날에는 옷을 세련되게 입거든요. 예를 들어 서양식 모자를 쓰거나 짝퉁이라도 밍크 코트를 입고 있으면 손님들은 그 사진사에게 갑니다. 왠지 사진을 잘 찍을 것 같은 심리가 작용하는 거죠.

특히 풍경화를 사진 배경으로 준비한 사진사가 손님들을 많이 끕니다. 풍경화 배경도 점점 일반화 되자 말을 가지고 손님을 끄는 사진사까지 등장했습니다. 단연 말을 갖고 있는 사진사가 고객 끌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북한에는 웬만한 지역에는 대부분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고, 군부대에 훈련용 말이나 화물 운송용 말이 있거든요. 그 말을 유료로 임대하는 겁니다. 군부대에서 말을 빌리는 가격은 하루 100달러로 알려졌는데요. 조각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 잔등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장군’이 된 것 같은 위상 효과로, 정확한 가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리 비싸지 않은 풍경화를 배경을 사진을 찍는 가격보다 4배 정도는 비쌉니다.

진행자 :아무래도 말을 이길만한 새해 기념 사진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요즘 유행하는 사진 배경이 혹시 따로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장마당이 발달한 지도 30년이 지났으니 사진 배경 또한 많이 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진 배경으로 사용되는 풍경화는 아무래도 시각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죠. 그래서 사진사마다 개성적인 부문을 살려 사진 배경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백두산 해돋이, 소나무 위에 소복이 내려 앉은 설경, 함박눈이 내리는 배경, 무지개가 비낀 배경 등으로 보편적인 편인데요.

다른 것이 있다면 배경에 글 내용이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양력 설에는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글자와 2025년을 크게 새긴다면, 초모가 시작되면 꽃 풍경에 ‘우정’, ‘조국 보위’라는 글자를 넣게 됩니다. 배경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므로 쉽게 바꾸지 못하는 요인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홍보물 제작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북한에는 각 지역 국영 공장마다 선전선동 벽보나 구호를 쓰는 직관원이 전문 인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개인 사진사들이 양력 설과 음력 설,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2.16) 등 국가 공휴일마다 사진 배경으로 사용할 풍경화를 공장 직관원에게 돈을 주고 부탁하는데요. 그러면 직관원들은 각목으로 만든 사각형 틀에 두꺼운 천을 붙이고 그곳에 그림을 그립니다. 색감과 목재 등 자재를 장마당에서 사야 하고, 특히 재능을 팔기 때문에 풍경화 가격이 싸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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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조선중앙TV를 보니 평양에서는 새해 첫날 가족들이 배경을 계절 별로 꾸며서 찍어주는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더라고요. 장마당이나 역전 등에 나와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을 개인 사진사라고 하셨는데 사진관에서 나온 사람들인가요?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는 개인이 녹음기, 사진기, 컴퓨터, 프린터를 구매하면 반드시 국가보위부에 신고, 등록 절차를 밟습니다. 전문 사진사가 아니라도 사진기를 보유한 개인은 필수적으로 지역에 자리한 국가보위부에 등록되어야 한다는 말인데요. 이렇게 등록된 사람들 중에는 사진관 영업허가를 받고 수익을 내는 공식 사진사가 있는데, 이들은 지방정부에 등록하고 매달 수익금의 일부를 내야 합니다.

새해 첫날 사진기를 메고 나와 있는 사진사들은 지방정부 명의 사진관 영업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개인 사진사도 많습니다. 다시 말해 장마당이 생기기 이전 1990년대 중반 이전에는 사진기 자체가 희귀물이어서 시, 군마다 자리한 국영 사진관에서만 사진을 찍었습니다. 개인 사진사라는 개념도 없었거든요. 러시아 벌목으로 해외 나갔다 온 노동자들이 간혹 사진기를 갖고 나왔지만, 사진을 찍어 현상해야 하므로 공식 사진관에 의뢰했습니다. 당시 사진사는 대부분 남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장마당이 발달하며 북한에서는 기술자로 분류되던 사진사 직업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는 변화를 맞이합니다.

2000년대부터는 흑백 사진에서 천연색 사진으로 또 한번 변화되었는데요.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필름으로 찍던 사진기는 구식이 되고, 디지털 사진기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만큼 사진기를 보유한 개인이 많아졌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 중국식당이나 임가공회사에 외화벌이 인력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한 여성들도 디지털 사진기를 갖고 나오거든요.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차이점은 필름 사진기는 현상된 사진만 보관할 수 있지만 디지털 사진기는 메모리 카드로 사진을 보관할 수 있고. 사진이 잘 안 찍히면 다시 찍는 장점이 있습니다. 북한의 사진 문화가 다양화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음을 엿볼 수 있죠.

진행자 :북한의 사진 문화도 많이 발전했네요.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는 모이기만 하면 기념으로 재미 있는 소품들을 장착하고 작은 사진을 찍어 나눠 갖는 게 유행인데요. 사람 많은 거리마다 이런 사진을 찍는 무인 상점들이 있더라고요. 북한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새해에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도 한국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걸까요?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앞사진(셀카)을 찍거나 사진관에서 찍는 문화, 신정이나 구정에 길거리에 줄을 지어 있는 지방정부 명의 개인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는 문화, 개별적으로 사진기를 보유하고 가족과 함께 찍는 문화 등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새해 축하'나 '우정' 문구가 특별히 새겨진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청춘을 기념한다는 의미가 뚜렷한 것도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도 작게 뽑아주는 사진이 있는데, 이걸 스마트폰이나 지갑, 가방에 넣고 다니는 한국문화를 즐기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