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현재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에 돌림감기(독감)를 비롯한 호흡기 감염병이 위험할 정도로 대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돌림감기는 고열 등 증세가 심해서 돌림감기용 약을 먹어야 낫는다고들 하는데요. 손 기자, 북한에선 코로나 봉쇄 이후 약품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돌림감기에 따로 먹는 약이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에도 겨울이면 감기가 도는데요. 고위 간부들에게는 돌림감기약이 처방될 지 모르나 일반 주민에게는 없습니다. 주민들은 해열제와 두통을 완화하는 약들을 돌림감기약으로 먹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북한에서 생산된 페니실린이나 아스피린, 중국에서 들여온 아목실린과 코트리목사졸, 암피실린 등이죠. 정통편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런 약들은 장마당과 지방정부 명의로 운영되는 개인 약국에서 판매됩니다. 어디서 팔든 생산지에 따라 유엔 약과 중국 약, 국산 약으로 분류되는 것도 흥미로운데요.
유엔 약은 국제 적십자사 연맹 등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평양 적십자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들어오므로 북한 주민들은 이를 한국 약으로 인식합니다. 유엔 약을 먹어보면 효과가 너무 좋아 가격이 비싸도 수요가 많은 이유입니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약품이 중국 약인데요. 중국 약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오가는 무역기관과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가는 조선족과 화교들을 통하여 대량 유입됩니다. 국산 약은 북한에 자리한 제약산업에서 생산된 약인데, 효과는 나쁘지 않지만 생산량이 적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지역마다 주민들이 사용하는 약 품종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유입 경로가 작용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중국과 인접한 함경북도와 양강도 등 북부 지역에서는 평양과 평안남도 등 내륙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정통편을 감기약과 관절통, 두통, 뇌졸중 등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하거든요. 물론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교역량을 따지면 북부 지역보다 내륙 신의주가 큽니다.
진행자 :정통편은 그럼 몰래 들여오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은 공식적으로 원료 수입은 허용하지만 약품 수입은 금지합니다. 따라서 약품은 대부분 밀수로 들어오는데요. 밀수는 압록강 하류에 자리한 신의주보다 압록강 상류에 자리한 북부 지역이 유리하므로 중국산 알약이 보따리 밀수로 들어오기 때문에 중국산 정통편이 대중 소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내륙에서도 중국에서 수입된 알부민이라는 광폭항생제 닝겔 주사가 돌림감기에 좋기 때문에 수요가 있지만, 가격이 2만원, 1.25달러로 비쌉니다. 그 돈이면 북부 지역보다 구매가 용이하고 가격이 싼 페니실린이니 카나미찐, 마이싱을 사서 맞습니다. 따라서 내륙에는 중국 약보다 북한 약을 사용하는 비중이 큰데요. 페니실린과 아스피린 등 해열제 원료와 주사 생산지가 평안남도 순천과 평안북도 신의주에 자리한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 생산량이 적다 보니 가짜 약이 많은 것도 심각한 문제죠.
진행자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해 북한 당국이 원활한 의약품 공급과 환자 상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표준 약국을 전국적으로 건설하고 있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죠.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장마당 약매대의 약장사꾼을 더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손혜민 기자 :국가보건제도가 무너지면서 장마당 약장사가 얼마나 활성화되었으면 북한 당국이 표준약국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지어냈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웃었습니다. 표준약국 명칭을 뒤집어 해석하면 비표준 약국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장마당에 대응한 조치로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모순적입니다. 예를 들어 표준약국들이 24시간 운영하면서 환자 상담과 처방, 제조를 위해 약품 창고까지 갖추고 인삼과 만년 버섯 등 건강과 장수에 좋은 수백 가지 귀한 약재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선전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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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이 선전한 해당 약들은 고려약(한약)입니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외화로 사들이는 신약 생산보다 약초나 산열매 등 국내 자원으로 고려약을 생산해 보건의료제도를 살려내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고려약을 치료제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신약이 없으면 몰라도 중국에서 다양한 신약이 수입되기 때문이죠. 물론 천연재료로 만든 안궁환과 뇌심사향 등은 두통과 고혈압 등에 특효입니다.
단 가격이 문제죠. 이달 평양 용성구역에 자리한 백두산제약공장에서 생산한 뇌심사향, 평양시 락랑구역에 자리한 광명제약소에서 생산한 안궁환을 평양에 자리한 표준약국에서 판매하는 가격을 확인했더니 북한 돈으로 품질에 따라 한 갑에 최하 10만원(6.25달러), 최고 30만원(18,75달러) 이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공장노동자 월급이 20배 이상 인상되었다고 해도 5만원~8만원입니다.
표준약국에서 두통약을 한 갑 사서 복용하려면 두 달 이상 월급을 모아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오죽하면 평양 사람들이 새로 들어선 표준약국은 ‘국가가 장사하는 표준약국’이라고 빈정대겠나요. 보건의료시설을 제대로 살리려면 장마당보다 더 비싼 고려약을 판매하는 표준약국보다 지역마다 자리한 병원마다 보건설비를 공급해주고, 의약품을 병원에 공급해주는 것이 실효적입니다. 그런데 국영병원에는 돌림감기 환자가 고열로 방문해도 처방할 약이 없어 환자의 고통을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입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병원 사정도 여의치 않은 북한에서 약은 집집마다 구비해 놔야 할 필수품일 것 같은데요. 한국에선 상비약으로 많이 꼽히는 게 소화제, 해열제, 진통제 정도 됩니다. 북한은 어떤 약들이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북한도 같습니다. 해열제, 지사제가 가장 많은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부 지역 사람들은 정통편을 판대기로 가지고 있고, 내륙지역 사람들은 아스피린과 테라미찐을 비상약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소화제는 비상약품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소화제는 많이 먹고 더부룩할 때 먹는 약인데, 하루 세 끼 배불리 먹을 것도 부족한데 소화제를 먹어야 할 필요가 있겠나요.
장마당 약 매대에 가면 피임도구까지 판매할 정도로 밀수로 들어온 각종 약품들이 정말 많은데, 상대적으로 소화제가 드문 이유도 만성적 식량난에 기인하는 겁니다. 수요가 없으니 밀수로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죠. 약을 전문 판매하는 매대 장사꾼들도 소화제 안 팔리기 때문에 어쩌다 소화제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뭐 그렇게 잘 먹어서 소화제를 사냐’고 말할 정도죠. 물론 10년 간 군사복무하고 제대 된 남성들이 주로 만성 위염으로 소화제가 필요하거나 찬 바닥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점심 먹고 체하여 소화제가 필요하지만 이 경우 소다를 먹습니다.
얼마나 약이 없었으면 최근에는 국가 과학자들이 살림집 공간에서 키토산을 불법 제조해 만병통치약으로 팔면서 살아가겠나요. 다가오는 4월이면 코로나로 막혔던 북중 육로무역이 완전 개방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는데요. 그러면 다시 북한에는 중국산 약품이 대량 유입되어서 주민들이 찾는 진짜 표준약국은 장마당이 될 것으로 평가됩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