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데일리NK라는 북한 전문 인터넷신문은 북한 외국문출판사가 발간한 2023년 달력을 입수했습니다. 이 달력에는 매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북한 최고 지도자들이 해외 정상이나 정치인, 사회 단체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의 사진과 설명이 담겼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습근평 국가주석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한 번도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장검 등의 사진은 담겼습니다.
언뜻 보면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은 오늘날 북한 체제 유지의 거의 유일한 담보입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대국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시장경제국가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떨까요? 러시아의 북한 지원 규모는 중국 지원에 비하면1/50정도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러시아 경제 규모는 이탈리아 경제 규모보다 좀 더 작은 세계 열한 번째에 속합니다. 특히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공산당 창시자 레닌을 “매국노”, “민족의 배신자” 등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중국을 더 무시하고 오히려 러시아에 대해 존경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중국의 막대한 힘과 영향력에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보고 김정은 정권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 유지가 아니라 한반도 북반부에 대한 통제입니다. 그 때문에 중국은 나중에 북한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고 중국의 정치 목적에 더 잘 맞는 정치 세력을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내정 간섭의 전례도 있습니다. 1956년 8월에 중국은 소련과 같이 조선 노동당 내부에 반 김일성 세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동안 북한 지도자들은 중국을 쓸모 있는 후원자인 동시에 위험한 이웃의 강대국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북한의 평범한 백성들이 중국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면 중국의 내정 간섭은 더 쉬워질 겁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어떨까요? 원래 러시아도 북한 국내 정치에 간섭을 많이 했습니다. 애초에 북한 국가의 창시자는 김일성이 아니라 소련 장성들이었습니다. 1940년대말 김일성은 그들에 의해 임명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활동하는 간부에 불과했습니다. 1950년대 말에 소련은 반 김일성 세력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북한 선전일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러시아는 힘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 내에서 공작을 벌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단한 경제 성공은 북한 사람들에게, 특히 북한 간부들에게 모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북한 내부 정치에 간섭할 능력도,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이 많다고 주장해야 하는 선전일꾼들은 중국의 지지보다 러시아의 지지를 강조할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은 쓸모가 많지만 위험하고, 러시아는 쓸모가 별로 없지만 위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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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