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이 설 명절을 허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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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은 민속명절인 음력설이었습니다. 음력설은 한국에서도 북한에서도 한 해 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북한을 보면 1980년대 말까지 음력설이든 추석이든 모든 민속 명절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쉬는 날로 여기지도 않았고, 명절 예절을 반동적인 악습으로 보고 단속했습니다.

그랬던 북한이 1980년대 말 들어와 왜 음력설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을까요? 이것은 북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진영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경향입니다. 공산주의혁명 때 공산당 대부분은 전통문화를 무시하고,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거의 구별하지 않고, 둘 다 반동적인 세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공산주의 국가들은 세계혁명에 대한 관심이 식어갔고, 자신의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이 강해졌습니다. 어느 정도 이것은 공산당 지도부의 이익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현대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인민들을 사상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민족주의나 애국심 만큼 힘센 도구는 없습니다. 공산당은 당초 기존 체제를 반대하고 정권을 타도하려 노력했으며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반대했습니다. 특히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들은 민족주의를 맹비난하고, 노동자 인민이면 누구든지 잘 살 수 있는 통일된 세계 사회를 만들 꿈을 꾸었습니다.

그렇지만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그들은 인민들을 통제, 관리, 동원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가치가 높은 수단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옛 소련에서 또 어느 공산국가에서도 혁명 직후 반동 분자나 봉건착취 계급으로 취급되었던 옛날 장군, 통치자, 사상가의 명예가 가장 먼저 회복되었고, 그 후 공산당 정부에 의해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북한 역사교과서는 단군신화를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백성들을 착취하기 위해 봉건집권 계층이 만든 거짓 반동신화라고 비난했습니다. 당시의 자료를 보면 반동분자 딱지가 붙여지고 관리소로 보내진 사람들 가운데 단군 전통을 보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에서 단군에 이야기가 거짓말이고 반동적인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치범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또 흥미로운 특징이 있는데요.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들은 각기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서로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묘사합니다. 당연히 북한은 이러한 주장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고구려 시대에 고구려가 중국의 넓은 지역을 통치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중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회주의 진영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북한 당국은 민족과 민족 명절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역사의 위대성도 강하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선전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여전히 종교나 사상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 유교도, 불교도 민족 역사와 직결된 사상이지만,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상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필요로 하는 민족주의는 체제에 도전하지 않고 체제를 보호하고 강화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민족주의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