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공화국이었던 까자흐스딴(카자흐스탄)은 매우 심한 정치 위기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지금의 까자흐스따 사태는 권위주의 국가를 연구할 때 큰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까자흐스딴은 중국과 북한보다 자유롭지만 분명 권위주의 국가입니다. 자유 선거도 없고 언론도 매우 심한 검열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약한 강도는 가능하지만 강하게 비판한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나라도 거의 모든 옛 소련 출신 국가들처럼 소련 말기 까자흐 연맹 공화국의 제1비서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나자르바예프입니다. 그는 거의 30년 동안 나라를 통치했는데 2-3년 전 고령으로 퇴직을 결정했습니다. 나자르바예프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데요. 문제는 까자흐스딴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나라여서 딸에게는 세습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자르바예프는 토카예프 외무상을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세웠습니다. 대신 나자르바예프는 민족 지도자 칭호를 받았고 중앙군사위원회 의장도 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을 비롯한 친족들을 큰 무역회사의 담당자, 군대와 보위부의 핵심 직위에 임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사실상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은 것이죠.
그러나 그의 야심은 며칠 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1월 초, 까자흐스딴 정부는 천연가스 가격을 3배 인상했는데요. 나무가 거의 없고 국토가 넓은 까자흐스딴에서 국민들은 가스를 요리할 때도, 난방할 때도, 자동차 연료로도 사용합니다.
까자흐스딴은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이지만 물가 인상 때문에 인민대중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자, 인민들은 물가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 요구도 제기하며 나자르바예프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민대중은 “늙은이는 나가라”고 외쳤습니다.
허수아비로 생각되었던 토카예프 대통령은 1월 5일 아침,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나자르바예프와 그 측근들을 퇴직시켰습니다. 물론 토카예프 대통령의 또 다른 목적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몇 시간 후, 1월 5일 오후에 최대도시 알마티와 몇몇 도시들에서 큰 혼란이 생겼습니다. 기본 이유는 나자르바예프의 측근들이 권력과 특권을 지키기 위해 토카예프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위부의 공작원과 밀정들은 국제공항이나 국가기관을 공격했고 거리를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와 경찰은 나자르바예프 대신, 현임 대통령 토카예프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힘으로 혼란과 폭동을 진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러시아에 파병을 요청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파병을 결정했는데요. 푸틴은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계산과 함께 이웃 나라에서 혼란이 생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러시아 군대가 도착하고 토카예프를 지지하는 군대들이 움직이며 혼란은 2-3일 내에 진압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까자흐스딴은 며칠 동안 소규모 내전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기간 동안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번 까자흐스탄 사태에서 교훈은 무엇일까요? 제일 중요한 교훈은 민중들이 불만을 가진다면 매우 작은 사건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위기가 올 때 특권 계층은 분열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작은 나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이웃 강대국의 태도입니다. 이 교훈들은 북한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가치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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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Lankov, 에디터:오중석,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