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은 조선 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가 생긴 지 76주년 되는 날인데요. 흥미롭게도 북한 정치에서 천도교는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물론 실권은 없는데요. 가끔 관영 언론에 등장하는 천도교청우당은 대남 선전 목적으로 이용되는 로동당의 하부조직일 뿐입니다. 그래도 다른 종교는 북한에서 천도교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불교이든 천주교이든 기독교이든 자신의 정당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천도교가 예외적인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부터인데요. 당시 소련의 지시에 따라 북조선 공산당은 인민민주주의 전략과 통일전선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이 전술에 따라서 공산당뿐만 아니라 비공산당 단체들도 정치에 참여해야 했는데 종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북한 지도자들은 천도교를 다른 종교보다 덜 위험한 세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해외에서 수입된 기독교나 천주교와 달리, 천도교는 조선 말기에 국내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민족 고유종교로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갑오농민전쟁과 천도교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도 중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천도교는 남한에도 꽤 많은 신도가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천도교 단체가 남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남한의 천도교는 매우 빠르게 쇠퇴했습니다. 기본 이유는 1940년대 말부터 남한에서 천주교와 특히 기독교가 아주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한에서 기독교는 최대 종교가 되었습니다. 결국 수십 년 전에 강력했던 천도교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남한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960만 명, 천주교는 380만 명인데 천도교를 믿는 사람은 6 만 5천 명 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남한 국민들 중 이슬람교 신자가 6만 명이니 천도교와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 남한에서 천도교는 매우 주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북한의 천도교 단체는 대남 선전 기관 그리고 남한의 체제를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으로 여전히 큰 지원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김달현이라는 사람이 천도교의 지도자였는데 그는 로동당의 지시대로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남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1950년대 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당시 북한당국은 천도교를 아예 없앨 수 있었지만 대남 선전에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천도교는 간판만 남겨뒀습니다. 이후 천도교 청우당 지도자들은 주로 북한으로 넘어간 남한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덕신입니다. 그는 원래 남한에서 외무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1970년대 해임된 뒤 큰 보상을 기대하고 평양으로 망명한 사람입니다. 얼마 동안 선전일꾼으로 일하다가 사망했고 북한은 그를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어 주었습니다. 최덕신의 사후, 부인 류미영은 천도교청우당 대표자로 죽을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남한에서 천도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종교의 의미보다는 역사 교과서 속 옛 단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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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Lankov, 에디터:오중석,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