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김정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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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2월 16일이 찾아왔습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 날, 김씨 일가의 두 번째 통치자인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에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백두산 밀영 이야기는 북한 선전일꾼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짓 역사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1940년대 초 김일성과 그 부인 김정숙이 소련에 있었고 소련군대에서 하급군관으로 지냈던 사실을 인정할 수조차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나라의 통치자인 김정일이 외국 땅에서 태어났고 더구나 처음에는 러시아식 이름을 가지고 있던 사실도 비밀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러시아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최신 연구에 따르면, 김정일이 태어난 연도도 1942년이 아니라 1941년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확인하다 보면 김정일이라는 사람의 비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사는 대신에 국가의 필요에 맞게 또한 김씨 일가의 필요에 맞게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배경까지 어용선전일꾼들에 의해서 크게 왜곡되었습니다. 물론 김일성도, 김정은도 처음부터 권력에 대한 야심이 있었고 권력 장악을 위해 많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어떻게 보면 우연히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김정일의 생활에 대한 공식 선전자료만 볼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김정일의젊은 시절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을 떠난 고급 간부들의 증언도 있고, 1960년대 초까지 북한에서 활동했던 소련 교포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따르면 아마 1950년대 말이나 60년대, 김정일이라는 젊은 사람은 정치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고 권력에 대한 야심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는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며 외국영화를 많이 보았고 특히 예술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에게서 압박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화감독이나 배우, 예술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 있게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가설적인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 들어와, 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자신의 사후 명예에 대해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김일성은 북한에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는 공산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자신과 비슷한 절대권력자들이 사후에 극한 비판대상으로 전락한 것을 아주 잘 보았습니다.

스탈린은 1953년 사망한 직후부터, 측근들에 의해서 심한 비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스탈린의 교훈을 배운 모택동은 살아 있을 때 후계자를 임명했지만 후계자로 임명된 중국군대 사령관 임표는 모택동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음모를 꾸미다가 사망했습니다. 그 때문에 김일성은 자신의 사후에도 자신을 비판할 수 없고, 자신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후계자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당연히 아들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그는 장남 즉 김정일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김정일도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요. 만약 김정일이 후계자 지위를 포기했다면, 비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독재국가의 정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30대 초반의 김정일은 결국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야망의 부속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역할은 김일성 사후에도 묘지를 잘 지키고 명예를 잘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역할을 잘 수행했습니다. 또한 그는 나라가 김일성 노선으로 계속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김일성은 사람보다 신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김정일은 비극적인 인물인 지도 모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