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정월 대보름 부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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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5일은 민족 명절인 정월 대보름이었습니다. 원래 이 날은 휴일도 아닐 뿐더러 아무 행사도 없었습니다. 북한당국은 정월대보름과 같은 민족명절을 반동적인 봉건주의 유습으로 간주하고 없애버리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들어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공산당은 정권을 잡은 직후, 민족 전통을 없애버리고 국제노동계급 국가가 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후 태도를 바꿉니다. 태도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산주의 창시자인 마르크스는 혁명가에게 조국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세계 어디에나 공산당은 민족의식이 반동적이며, 지주와 자본가들이 민중을 속이기 위해 이용하는 가짜 사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식민지 지역에서 공산당은 민족해방을 주장했지만 이는 인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공산 혁명가들의 꿈은 오로지 세계의 공산화였습니다.

물론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1940년대 말, 북한에서 봉건주의 문화를 없애버리기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요. 이 시기, 불교와 유교를 비롯한 옛 종교의 전통과 유산은 파괴됐습니다. 불교 사찰은 철거되고 옛 서적들은 찢겨졌습니다. 높은 평가를 받던 역사적 인물들도 50년대 말이나 60년대 초반, 반동적인 인물로 규정되고 비판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이순신 장군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소련, 동유럽, 중국 등 공산국가 어디서나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은 옛 전통을 말살해 버리고 대신 새로운 사회주의 전통과 사상을 정착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지배계급이 된 공산당 간부들은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민족주의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통치하는 나라와 이익이 충돌하는 이웃 나라들을 경쟁자, 적대세력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1960-70년대 들어와 사회주의진영 국가들은 서로 많이 다퉜는데요. 대표적으로 소련과 중국은 거의 30년동안 서로를 적대시했습니다.

북한에서도 매우 비슷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는데요. 고전소설이 발표되었고 영광스러운 민족의 위대성이 크게 선전됐습니다.

1950년대에 봉건주의 거짓말로 평가됐던 단군신화는 다시 국가 사상의 한 부분으로 포함됐습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부터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북한정권은 자신을 혁명정권보다 민족정권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옛 명절의 부활은 그때 시작된 변화 중의 하나였는데요. 1980년대부터 민족 전통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가 갈수록 우호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세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흔들리다가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새로운 사상적 기초가 필요했고, 이러한 사상의 기초는 불가피하게 우리민족 제일주의, 쉽게 말해 민족주의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북한정권은 자신의 혁명성보다 자신의 민족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걸어간 길을 감안하면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