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의 파렴치한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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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의미가 큰 국가절입니다. 이날은 북한에서 ‘3.1인민봉기’로 알려진 날인데요. 남한에서 ‘3.1절’이라고 부릅니다. 104년 전에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은 식민지와 제국주의에 도전하고 독립국가의 복구를 시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본 식민지 당국자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항쟁이었습니다.

남한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도 3.1운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이 운동 역사가 너무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닌데요. 왜냐하면 북한 당국자들은 객관적인 역사연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역사는 민중을 통제하고 조종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세계 어디에나 지배계층은 이러한 특징이 있지만 그래도 북한만큼 파렴치하게 역사를 도구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제가 평생 동안 남북한 역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세계 역사학자들 가운데 북한 어용학자들의 연구를 역사연구로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대나 중세 역사에 대해선 북한 학자들도 나쁘지 않은 연구를 했는데요. 하지만 현대 역사에서 북한 교과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완전한 날조입니다. 사실과 관계가 없고 그저 당 중앙이 시키는 대로 쓰인 글일 뿐입니다.

3.1운동에 대해서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제일 먼저, 북한 측은 3.1운동이 평양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하는데요. 당시에 평양은 큰 시골 도시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독립운동가들이 모였던 곳은 서울입니다. 서울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선언을 낭독하고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3.1운동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어용일꾼들은 무조건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왜곡도 있습니다. 북한 어용 역사책들은 3.1운동을 지도한 사람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김형직이 3.1운동에 참가한 것은 사실인데요. 일본 경찰 자료를 보면 쉽게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김형직은 애국심이 많았지만, 독립운동가도 간부도 아니라 그저 수십만 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것은 김형직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는 애국심이 많은 지식인이었지만 그의 활동을 과장 평가하면 안 됩니다. 김형직과 같은 사람들은 식민지 조선에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북한 어용 역사책들은 당시 7살이었던 김일성이 만세행진의 선두에 섰다고 주장도 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일 뿐만 아니라 김형직과 강반석에 대한 중상모략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일본 헌병들이 아무 때나 공격할 수 있고, 참가자들을 때리고 체포할 수 있는 상황에서, 7세 어린이와 함께 시위를 하러 가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뿐만 아니라 헌병과 싸운다면, 7세 어린이는 도움이 되는 대신에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김형직도 강반석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북한의 파렴치한 역사왜곡을 보면서, 짜증도 많지만 유감도 없지 않습니다. 1919년 3월, 평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했는데 그 중에 한명이 기독교 학교를 다닌 젊은 지식인 김형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의 역사왜곡 때문에 김형직의 진짜 업적은 웃기는 것으로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북한측은 100년전에 사망한 김형직을 모욕하고 있는 셈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