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최근 북한에서 높아진 여성의 지위

0:00 / 0:00

매년 3월 8일은 국제부녀절인데요. 이날은 바로 세계 여성들의 연대성을 표현하는 날입니다. 원래 부녀절은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명절이었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은 좌익들뿐만 아니라 우익들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날은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3.8 국제부녀절의 역할은 여성들이 과거 역할 즉 부인이나 어머니의 역할을 감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남녀가 법률적으로 평등하다고 해도 여성들은 사회 출세에 대한 기회가 남성들만큼 많지 않습니다. 세계 어디에나 고급간부들, 대기업 지배인이나 사장들 중에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정치를 보면 어떨까요? 1948년 북한 국가가 창립되었을 때, 북한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날 어용언론의 주장과 달리, 당시에 김일성은 인기가 있었지만 유일한 지도자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옛 소련의 기록을 보면 1945년 말에 소련 군인들이 조선공산당 담당자 후보를 토론했을 때, 후보자 중에 한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정애입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소련 장성들의 선택은 김일성이었습니다.

그래도 1950년대 북한 지도부에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박정애와 허정숙인데요. 원래 박정애는 소련 정보기관의 정보원이었고, 허정숙은 중국공산당 간부였습니다. 그렇지만 1960년대에 박정애는 숙청을 당했고 허정숙도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습니다.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 김씨 일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고급 정치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말, 김일성의 후처였던 김성애는 얼마 동안 정치 활동을 했고 여맹 위원장에 임명되었는데요. 그러나 김성애의 희망과 목적은 자신의 출세보다는 자신의 아들 김평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김정일이 후계자로 정해지자 김성애와 김평일은 곁가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시대도 매우 비슷합니다. 김정일에게는 여동생 김경희만 있었으며 김경희는 김정일의 제일 가까운 친족이었습니다. 그래도 김경희는 북한 정치에서 별 역할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김정일은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을 많이 믿고 중용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 들어와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세계 국가에 비하면, 북한 지도부에서 여성들의 비율은 여전히 너무 작습니다. 그래도 과거보다 많은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사례는 여동생 김여정입니다. 김정일시대, 김정일은 여동생 김경희보다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을 중용했지만 김여정의 경우 남편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여정은 오늘날 북한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사람이라 해도 별 과언이 아닙니다.

외무상 최선희는 더 좋은 사례입니다. 최선희는 평백성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는 총리를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였다면 최선희는 외무상이 될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김정은의 비서실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은 현송월입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작년 말부터 자신의 딸과 여러 행사에 많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의 딸은 앞으로 조선민족의 수령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그 때문에 올해 국제부녀절에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북한에서도 최근 여성의 지위가 많이 좋아졌다는 점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