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공화국이라고 우기는 북한 왕국

0:00 / 0:00

최근 몇 개월 동안 북한 김정은 총비서는 딸 김주애와 함께 공개 석상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현 단계에서 진짜 후계자로 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지만, 남한을 비롯한 해외의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정권 세습 준비가 시작됐다는 증거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1970년대 말, 김정일이 세습 준비를 시작했을 때, 남한에서는 보수파 뿐 아니라 북한을 옹호하는 사람들까지 김정일의 등장을 비판했습니다. 세계 공산주의자들도, 남한 좌파 운동가들도 김정일로의 세습을 창피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분명했습니다.

세습은 자본주의 사회 기준으로도 반동적인 것이고 옛 봉건사회에만 있었던 일입니다. 1970년대 말, 세계 여러 나라 공산주의자들과 진보 단체들은 김일성의 아들이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고, 이것이 반동 거짓 선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0년대 초 김정은으로의 세습 당시에도 이만큼의 반대는 없었습니다. 김정일로의 세습 시기, 남한 좌파 운동가 일부는 이 사실에 큰 타격을 받고 돌아서기도 했지만 2천년대엔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중세 봉건국가처럼 왕위를 세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김정은 딸 김주애의 등장도 그녀의 나이와 성별을 감안하면 놀랍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도, 세계에서도 북한이라는 왕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주애는 여왕이 될 수 있는, 말 그대로 공주입니다.

물론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습은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독재국가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비상구가 없습니다. 가설적으로 독재자가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해도, 실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권력을 포기한 독재자는 측근들에 의해서 체포되거나, 운이 좋지 않다면 암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직한 독재자는 어용언론에서도, 공개 정치 무대에서 심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를 대체한 새로운 통치자는 국가의 어려움과 문제점에 대한 책임을 모두 다 선임자에게 돌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이 중세처럼 세습을 시작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련에서도, 동유럽 국가 대부분에서도 공산국가 독재자들이 퇴임 이후에 비난 대상이 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마구 비난한 사람 대부분은, 독재자가 살아 있을 때 수없이 충성 맹세를 했던 고위급 간부들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공화국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왕국이 북한 말고도 몇 개 더 있는데요. 동남아의 캄보쟈, 구소련 국가인 타지키스탄 등입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심한 빈부 격차입니다. 대통령이나 위원장으로 위장한 왕과 그의 가족, 공주와 왕자들 또 극소수 고위급 간부들은 비리 행위를 거의 공개적으로 하고 막대한 부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왕족뿐만 아니라 귀족도 있습니다. 고급 간부의 아들, 딸들이 바로 귀족입니다. 그리고 이 신분도 역시 세습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 통치자들은 진실을 숨기려고 노력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나라가 공화국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선거도 실시합니다. 그 나라 지도자들조차 세습이 매우 낙후되고 반동적인 원칙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