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은 북한에서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2002년 7월 1일 북한 당국은 경제관리개선조치 이른바 7.1조치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상을 강조하고 경제를 간과하는 북한은 공식적으로 7.1조치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고 북한 선전일꾼들도 이에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이 침묵을 지킨 이유가 있습니다. 7.1조치는 사실상 북한 경제의 시장화, 자본주의 등장을 뜻하는, 북한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기 때문입니다. 7.1조치는 당국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가격과 생활비를 전반적으로 다시 제정한 국가적 조치였습니다. 오랫동안 8전 정도 받았던 배급소의 쌀을 7.1조치 이후 하루 아침에 44원으로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장마당 가격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쌀 뿐 아니라 교통비, 공업제품 등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이 수십 배나 수백 배로 높아졌습니다.
생활비 즉 로임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7.1조치 이전 생활비는 주로 80원이나 100원 정도였는데 10배나 20배로 높아졌고 1000원에서 2~3000원까지 올라갔습니다. 문제는 로임 증가가 물가 상승만큼 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거의 모든 북한 사람들은 월급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많이 적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이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위기와 혼란에 빠진 고난의행군시대에 북한에서의 돈은 사실상 종이 조각과 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북한 사람들이 받은 로임으로는 장마당에서 강냉이 몇 kg을 사기도 힘들었습니다. 로임이 가격만큼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1990년대부터 로임은 갈수록 상징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기업소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원래 북한 기업은 국가로부터 매우 심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지만 7.1조치 때문에 이 같은 통제와 감시는 많이 약화됐습니다. 7.1조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지만 얼마 후 북한의 장마당은 활발하게 되었고 상설된 지역시장도 많이 열렸습니다. 대부분 지역시장의 경우 사실상 오래전부터 있었던 장마당이 간판만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정치 변화는 많은 가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배인들을 비롯한 경제간부들은 권력이 많아졌고, 필요에 맞게 노동자들을 더 쉽게 고용할 수도 있었으며, 보다 쉽게 퇴직시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고 좋은 월급을 받을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조치들은 당국자들의 설명처럼 사회주의경제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이지 시장화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7.1조치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1990년대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개인 경제, 비국가경제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7.1조치는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에 들어와 북한지도부는 이 조치가 정치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7.1조치 대부분은 사실상 취소됐습니다. 당시 경제를 바꾸려던 몇몇 간부들은 보다 더 강력한 시장화 경제개혁을 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계획은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지만 그들 계획은 2010년대 서랍에서 빠져나와 김정은시대 새로운 경제정책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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