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8년 전인 1894년 7월 10일, 평양 근처에서 김형직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김형직은 17세 때 강반석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얼마 후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김성주, 그가 바로 우리 청취자들에게 김일성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김형직은 오늘날 북한에서 우상화 대상인데요. 세계 어디에서나 왕국이라면, 해당 왕조 창시자의 조상들은 임금과 비슷한 숭배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이씨 조선의 창립자인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은 공식적으로 임금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북한에서의 김형직 숭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형직 동상도 있고, 김형직 대학도 있고, 김형직군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책에서 나오는 김형직은 진짜 100년 전에 살았던 김형직이라는 젊은 조선 지식인과는 거리가 참 멉니다.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김일성 부모의 사회계층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농민 출신이라는 주장이 많은데요.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김일성 가문은 농민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농민이라면 최소한 부농입니다. 당시의 세금 자료를 보면 김형직의 재산은 1,100원 이상이었습니다. 이는 일반 농민이 7-8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입지 않아야만 벌 수 있는 큰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얘기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달리, 공산주의 사상가나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상급 계층 출신입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할아버지는 종교인이었고 아버지는 변호사였습니다. 레닌의 아버지는 하급 귀족이었고 고급 관리였습니다.
김일성도 예외가 아닙니다. 당시에 부잣집 아들딸들만 필요한 교육을 받을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의 교육 수준이 이를 증명합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형직은 기독교를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는 숭실학교를 다녔는데요. 숭실학교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창립한 학교였습니다. 당연히 숭실학교 학생들은 거의 모두 기독교를 열심히 믿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숭실학교가 있던 자리는 오늘날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김형직만 기독교를 믿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청취자들이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라고 알고 있는 강반석은 기독교를 남편보다 더욱 열심히 믿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 이러한 진실은 모두 숨겨졌는데요. 하지만 해외에는 이를 증명할 자료가 매우 많습니다. 19세기말 조선에서 기독교는 진보, 기술 발전과 직결되는 사상이었으며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는 과학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김일성 부모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북한은 김형직이 3.1운동, 즉 3.1인민봉기의 지도자라고 주장하는데요.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물론 김형직은 3.1운동에 참가했고, 일본 경찰에 의해서 체포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김형직을 수만 명의 참가자 중 평범한 한 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김형직이 독립운동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총사령관이 아니라 실제 분대장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김형직이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유감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의 생애는 아들 김일성 때문에 많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김형직은 위대한 지도자도, 영웅도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 도와주는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독립과 발전을 희망했습니다. 김형직은 교원, 한의사, 기독교 전도사로도 일하면서, 주변 인민들을 도와주는 활동을 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우상화와 왜곡 때문에 김형직이란 사람의 진짜 훌륭한 부분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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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