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은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녀는 1892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서 강반석은 다른 백두혈통과 똑같이 한 명의 여성이 아니라 여신의 대우를 받습니다. 19세 말 기준으로 그녀는 탁월한 인물이었지만 역사를 사실의 기록이 아닌 선전 활동으로 생각하는 북한의 학자들 입장에서 강반석은 숨길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강반석도, 그의 남편 즉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 대부분이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강반석’이라는 이름만 잘 봐도 이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반석’이라는 이름은 기독교 교회의 기초, 즉 성경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녀는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는 일종의 종교적 의례인 세례를 받으며 신앙심을 표현하는 의미에서 ‘반석’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또 평생 동안 교회의 일반 신도가 아닌 선교사나 교회 간부로 열심히 활동했고 교회 조직, 교육, 선교를 잘하는 열성 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1945년 이후 북한 당국자들은 종교에 대해 극한 적대심을 보였고 특히 서방 민주주의 국가와 관계가 깊은 기독교를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강반석의 신앙심과 김일성의 종교적 배경은 언급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 선전 일꾼들은 강반석을 기독교 선교사가 아닌 항일투쟁가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김일성이 신앙심이 충만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한반도의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유독 기독교 가정 출신이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유교 사상 즉 구식 봉건사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꿈을 꾸었습니다. 그 가족의 자녀들은 근대식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양 사상인 공산주의에 관심을 돌렸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결코 예외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선전 일꾼들이 강반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숨기고 싶은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강반석과 그 가족들은 가난한 일반 농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본 당국이 보유한 김일성 가족의 소득자료를 보면 이들은 부농이나 하급 지주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농촌에서 최고 5%에 속한 사람들인데요. 이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다수의 공산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자신을 노동계급이나 빈농 대표자로 자처했지만 그들의 절대 다수는 부유한 가정 출신입니다. 마르크스는 부유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이었고 엥겔스는 대기업 자본가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평생 대기업의 소유자로 지냈습니다. 레닌은 하급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모택동 역시 부농의 아들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봉건사회나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압도적으로 잘 사는 자녀들에게 차려지는 특권이었습니다. 김일성도 예외가 아니었던 겁니다.
오늘날 북한 기준으로 보면 강반석은 당연히 반동분자입니다. 서양 선교사들과 가깝게 지냈고 반동 기독교를 열심히 믿을 뿐만 아니라 적극 전파했으며 부농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가리고 싶은 북한 당국의 입장이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 여성의 인생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강반석은 조선 땅에서 봉건주의 체제를 타파하고 보다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조선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