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한국과 중국의 수교 그리고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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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인 1992년 8월 말, 북한 외교는 매우 심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바로 중국과 남한의 수교 때문입니다. 1948년부터 북한 정권은 자신들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해 왔고 북한과 수교한 나라들은 남한과 수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남한의 태도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와 남북한은 이 규칙을 과거보다 완화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발전도상국들, 주로 아프리카 나라들은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소련과 같은 핵심 국가들은 여전히 서울과 평양 사이에 한 곳만 선택해야 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 속에서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이 커졌는데요.

기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들어와 남한은 고속 경제발전 덕분에, 돈도 기술도 많아졌고, 무역 대상으로 큰 매력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평등한 무역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사실상 사회주의 동맹국들에 거의 공짜로 물건을 받을 생각만 했습니다. 북한 선전일꾼들은 사회주의진영 무역이라고 주장했지만 소련도, 중국도, 뽈스카도 북한과의 무역은 진짜 무역이 아니라 원조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1980년대부터 사회주의진영 국가 대부분은 물밑에서 남한과의 무역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수교를 하지 않은 채 무역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1980년대 말 냉전이 종식되면서 사회주의진영 국가들은 하나둘씩 남한과 수교를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웽그리야가 남한과 수교했으며, 나중에 소련까지 수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이 남한과 수교국이 됐습니다. 중국의 수교는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을 잘 보여줬습니다.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기본 이유는 시장 경제국가인 남한의 경제 성공이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이 북한이 머지않은 미래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나오는 분석뿐이 아니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많았습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조만간 동독처럼 붕괴하고 남한에 흡수 통일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북한 집권 계층은 인민들을 잘 감시함으로써 국내 안전을 유지하고, 반정부 시위를 막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대부분은 북한 정권을 나쁘게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붕괴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완충지대로 생각했고 남한도 독일의 전례를 보고, 갑작스러운 통일은 큰 경제의 부담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웃나라들도 북한 체제 붕괴를 사실상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한은 무너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생존에 성공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은 자신의 전략적인 이익을 감안해 소규모 대북 지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북한을 평등한 상대방이나 경제협력 동반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북한은 전략적인 완충지대입니다. 세계에서 매력이 있는 코리아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입니다. 이 상황의 시작은 바로 30년 전 한국과 중국의 수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은 그때부터 북한이 전략적인 의미가 있지만, 경제적인 의미가 없는 상대라는 것을 분명히 했고 이 인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