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친구는 저처럼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하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이 친구는 "구소련에서 북한의 위상을 가장 크게 파괴한 세력은 바로 북한 당국, 자신들의 대외 선전부서였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저는 소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역사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북한이나 아시아와는 별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좀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소련 국민들도 북한에 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북한 선전 자료였습니다. 당시 소련에는 북한 당국에서 내보낸 선전 자료들이 많았습니다. 북한 당국이 해외 홍보용으로 만드는 '조선화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이 잡지는 러시아 말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어로 발간됐습니다.
1970년대, 북한 당국자들은 이 잡지를 소련 국민들이 굉장히 싼 가격에 구독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 조선화보의 구독료는 비슷한 소련 잡지의 4분의 1도 안 되는 아주 싼 값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가격엔 배달비만 포함됐던 것 같습니다. 잡지 책 자체는 종이도 좋고 인쇄 기술도 세계 수준이었으니 책값을 받으면 꽤 비쌌을 겁니다. 그러나 잡지의 내용은 온통 김일성, 김정일 찬양 일색이었습니다. 결국 북한 당국자들은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고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조선화보'라는 잡지를 엄청난 돈을 들여 발간해 공짜로 외국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어쨌든 1970년대 소련에서 외국 생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소련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조선화보'를 봤습니다. 특히, 조선화보는 손님들이 기다릴 때 읽을 싼 잡지를 찾는 이발소에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북한 선전 일꾼들은 당 중앙에 소련 사람들이 조선화보를 많이 읽는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잡지를 본 소련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보고하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화보를 읽어본 소련 사람들에게 북한이란 국가는 웃음거리가 됐고 소련 사람들은 조선 화보 속의 북한을 조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잡지를 채우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가 문제였습니다. 소련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를 하나님과 동급으로 만든 잡지의 내용을 보면서 굉장히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선화보에서 보여주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은 개인이 완전히 무시되고 수령님만 생각하는 기계로 묘사됐습니다. 또, 민족주의 경향이 강한 기사는 불편했습니다.
결국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인 북한 정부는 소련에서 그들이 원했던 것과 정 반대의 결과를 얻어 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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