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리설주 등장 9년을 맞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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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한 첫 번째 7월인 2012년 7월은 유난히 사건이 많은 달이었습니다. 인민군을 총괄하던 리영호 차수는 갑자기 숙청되었고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원수 계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일 흥미로운 사건은 7월 5일에 있었습니다. 이 날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에서는 김정은 바로 옆에 앉은 미모의 젊은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처음에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몰라서 일부 관찰가들은 그녀가 김여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엔 김여정의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일 후인 7월 25일, 북한 관영언론은 이 여인의 정체를 공개했습니다. 바로 김정은 부인 리설주였습니다.

당시에 이것은 꽤 새로운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수십 년 동안 북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부인과 아들딸에 대해 거의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김성애와 결혼한 지 15년이 지난 후에야 북한 언론을 통해 김성애를 공식적으로 공개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더 엄격했습니다. 김정일은 주변에 여자가 많았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딸까지 많이 낳았지만, 김정일의 여자들은 관영언론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고급간부, 외교관, 외국 기자들, 해외에서 북한에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 다 김정일의 여자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북한 인민들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2011년 말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은 이 전통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리설주는 김정은 바로 옆에 있는 모습으로 공개석상에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외부에서 김정은-리설주의 부부관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북한 최고 통치자가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존경을 많이 표시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입니다.

북한 정치를 생각해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김정은이 2012년에 옛날 전통을 버린 이유입니다.

그 이유를 알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요. 갑자기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은 나라의 전통을 바꿀 생각도 없지 않았고, 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해외 생활도 했고 북한을 바꿀 생각도 있었습니다. 2012년 김정은은 농업에서 포전담당제와 분조관리제를 도입했고, 인민들의 소비생활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민들에게 어느 정도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물론 감시와 통제체제는 여전히 엄격했지만, 생활은 빠른 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북한은 경제 개혁뿐만 아니라 문화부문에서도 변화를 많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 사례는 음악, 특히 모란봉악단의 옷차림과 태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이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희망이 많았던 2012년의 태도를 포기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경제 개혁을 포기하고 중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열심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반동문화배격법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북한 정권의 태도가 임시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신형코로나비루스 그리고 2016-2017년의 북한의 모험주의적인 대외 정책이 초래한 대북제재입니다. 그래도 두 가지 모두 영원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신형코로나비루스는 그렇습니다. 어쨌든 저는 오늘날까지 리설주를 북한 신문이나 TV에서 볼 때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많아 보였던 김정은정권 초기를 생각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사작성: 란코프,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