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개혁의 첫 걸음에서 멈춰버린 8.3소비품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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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8월 3일, 김정일은 평양의 경공업제품전시장을 방문하고 소비품을 많이 만들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8.3소비품생산운동의 시작입니다. 사회주의국가 역사는 경제 실패의 역사인데요. 제일 좋은 사례는 남북한이나 동서독과 같은 분단국가의 역사입니다. 분단 당시에 경제차이가 거의 없었던 두 지역이지만, 수십 년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회주의 경제가 가장 실패한 부문은 경공업과 봉사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식당주인은 손님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지 못한다면 식당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에서 지배인이 맛있는 요리를 제공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배인에게 중요한 것은 인맥을 잘 관리하고, 훔친 식품을 간부들에게 잘 바치고 자신의 충성심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공산당 지도부도 이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규모 경공업을 많이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를 경험했고, 수많은 나라에서 암묵적으로 개인봉사, 개인식당, 개인경공업생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1970년대 헝가리에서도 폴란드에서도 개인들이 구두수리, 옷 만들기, 식당 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개혁개방을 시작한 중국에서도 개인경제는 농업과 경공업 그리고 봉사부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1984년 시작된8.3작업반은 당시에 북한 지도부가 어느 정도 같은 방향으로 갈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8.3작업반은 말로는 국가기업에 속했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자율성이 높았습니다. 특히 8.3작업반이 만든 상품은 국가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합의가격으로 시장에서 팔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8.3 작업반은 사회주의간판을 내걸고 붉은 모자를 쓰고는 있지만, 사실상 시장경제 단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중국처럼 공산당의 지도 밑에서 자본주의 건설을 시작한 나라들은 처음에 개인기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고, 국가기업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지금도 경제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1984년8.3운동을 시작했을 때, 경제개혁 방향으로 제일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사회주의국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연세가 드신 청취자들이 기억하는 바와 같이, 8.3작업반의 생산활동 덕분에 소비품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당시에 10일시장도 매일시장이 되어버리고, 거리에서 소비품을 파는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정부는 8.3작업반을 시작함으로서 개혁을 향한 첫걸음을 시작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두번째 걸음은 아주 오랫동안 내딛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말 북한은 8.3작업반의 규모의 확장을 허용했더라면, 이 작업반은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개인회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같은 무렵에 북한 지도부가 중국처럼 농업에서 농가책임제를 도입했다면, 아마 1990년대 중반 기근을 회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개혁을 할 때, 중국처럼 정치자유화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건설하면서도 중국특색 사회주의라고 열심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북한 정권은 1980년대 소규모 경제개혁도 정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국의 길을 걷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때문에 1984년에 출발한 8.3운동은 북한역사가 놓친 기회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란코프,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