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은 선군절이었습니다. 북한 관영언론에서 ‘선군’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라진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특징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이런저런 사상운동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필요가 사라졌다고 판단해도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사상운동이 끝났다는 말조차 없습니다. 대신에 이 사상운동에 대한 언급이 언론에서 빠르게 사라집니다.
북한은 선군정치가 1930년대 초 김일성이 만주에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아무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북한에서 1997년이나 98년까지 ‘선군’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선군정치는 왜 생겼을까요? 매우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데요. 선군정치는 바로 김씨일가의 두 번째 세습 지도자, 김정일의 개인 정치 구호였습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든 공산국가의 최고지도자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상가, 철학 지도자로 포장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을 봅시다. 현재 중국의 지도자 습근평도 새로운 사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습근평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전임 지도자 호금도 역시 그가 만든 특별한 사상이 있었는데요. 바로 과학적 발전관입니다. 중국은 권위주의국가지만 세습 독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새 지도자가 나오면 옛날 사상은 창고로 보내집니다.
따라서 김정일이 새로운 사상을 만든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소련에서 수입된 맑스레닌주의를 무시하고, 주체사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만든 사상에서 김정일은 왜 군대를 이처럼 강조했을까요?
흥미롭게도 1990-2000년대 북한 사회를 보면 선전일꾼들이 밤낮없이 선군정치를 운운했지만 실제로 군대의 역할이 많이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김정일은 과학적 특색주의, 세계 행복주의와 같은 사상 대신에 선군정치를 만들었을까요? 1995년 즈음, 김정일은 붉은기 사상이라는 걸 새롭게 만들고자 했다가 선군정치를 내놨습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얼마 동안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을 바꾸고자 고민했습니다. 원래 북한통치구조는 구소련을 그대로 모방한 체제입니다. 당연히 조선노동당이 중심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세계 곳곳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지며 김정일은 이 정치 구조에 의심을 품게 됐을 겁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당 회의가 참 많이 열립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에는 로동당 회의가 거의 열리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당시 로동당의 힘에 대해서 의심이 컸고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당이 아닌 인민군의 힘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입니다. 김정일은 군인들에게 보상을 제대로 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의 충성심은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보상 대신 선군정치를 앞세우며 상징적인 보상을 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선군정치도, 김정일이 집권 후기에 강조한 강성대국도 사라졌습니다. 김정은은 아직 개인 사상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한 역사를 보면 김정은의 특별한 사상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란코프,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