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암살 사건을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 즉 기록 영화 '암살자들'(Assassins)이 한국에서 예술영화 불인정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됐을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 여당이 주도한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경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라이언 화이트 감독이 제작을 맡은 104분 분량의 영화 '암살자들'은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윁남) 국적 여성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시티 아이샤가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김정남의 얼굴에 문질러 숨지게 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을 재구성해 암살의 실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기록영화)인 이 영화는 제3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더 케이스 어게인스트 8'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화이트 감독의 네 번째 영화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가 '암살자들'을 지난 5월 17일 예술영화로 불인정하면 사실상 예술극장 상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영진위의 예술영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서 해당 영화를 상영하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 일반 극장에서 상영해야 하기 때문에 상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극장에서는 해외 블록버스터, 즉 대작 영화나 한국 내 기대작보다 우선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어 상영관을 확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질적으로 사실상 개봉을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지적입니다.
이에 영화 '암살자들'의 수입·공동배급사들은 7일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에 예술영화 불인정 사유와 명확한 심사기준을 공개해달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수 김(Soo Kim)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은 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예술영화 불인정 판정 조치는 이 영화가 불러올 북한의 반발을 한국 정부가 얼버무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This seems consistent with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tiptoeing around any North Korean backlash the movie would elicit.)
이어 이 다큐멘터리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을 적나라하게 조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이 영화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지지로 인해서 북한에 의해 비난을 받길 원치 않는다면서, 한국 정부가 중립을 지키려 하고 있지만 사실상 북한의 규제에 굴복하는 데 더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The South Korean government doesn't want to get slammed by Pyongyang for any sort of endorsement of this film. It seeks to stay "neutral," which, in this case, is actually closer to submission to North Korea's restrictions.)
그러면서 김 분석관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There is no reward for such behavior, though.)
오히려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의 신뢰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북한의 압박에 대해서 한국이 매우 유약하다는 메세지가 북한에 지속적으로 전달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매튜 하 연구원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한국 정부는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심각한 비난을 받아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이 영화에 대해서도 대북전단금지법과 같이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하 연구원: 영화의 소재가 북한의 입장에서 상당히 도발적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As the subject matter for the film is also quite provocative in the North Korea contex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likely will suggest such actions is to prevent escalation with North Korea and provoking tensions.)
한편, 이 영화는 지난해 1월 미국 중서부 유타주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개봉했으며, 많은 미국 영화 평론 기자들과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실제 현재 이 영화는 세계 최대 영화평가 웹사이트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참신성을 평가하는 '신선도'에서는 98%, 흥미를 나타내는 '팝콘지수'에서는 92%의 지지를 획득했으며, 전 세계 많은 평론가들과 관람객들은 이 영화를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매우 볼만한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9일 현재 '로튼 토마토'에 전 세계 평론가와 관람객 평가를 살펴보면, 호주(오스트랄리아) 영화 비평계에서 가장 유명한 데이비드 스테레톤(David Stratton) 영화 비평가는 "놀라운 이야기이며, 화이트 감독이 자료를 철저한 방식으로 종합해 정치적 암살 사건 중 하나를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고 평가했습니다.
데이비드 스테레톤 비평가는 지난해 3월 한국 봉준호 감독의 '옥자'라는 영화를 온라인 영화 서비스인 '넷플릭스'(Netflix)에서 볼 만한 영화에 추천하기도 하는 등 한국에서도 알려진 인물입니다.
미국 AP통신의 린지 바(Lindsey Bahr) 기자도 이 영화는 충격을 주고 격노하며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영국 대표 신문인 '더 타임스'(The Times)의 케빈 마허(Kevin Maher) 기자와 영국 신문 '옵저버'(The observer)의 시미란 한스(Simran Hans) 기자 등과 일반 관람객들은 "북한 독재자 김정은이 이복형을 암살하는 화려한 다큐멘터리", "김정은이 어떻게 형을 죽여서 독재정권을 장악했는지 그 모습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등이라고 호평했습니다.
한편, 이 영화의 라이언 화이트 감독은 한국 영진위의 예술영화 불인정 판정에 대해 입장을 묻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질의에9일 오후까지 답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