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스페인(에스빠냐)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 가담자인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 씨가 미국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미국 법원이 의문을 제기하고, 특수한 미북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안 씨가 스페인에 송환되기 위해서는 스페인 법뿐 아니라 미국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합니다. 지정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은 9일, 지난 2019년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 당시 안 씨의 행위가 스페인 법이 아닌 미국 법에 따라서도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지 여부를 30일 내에 서면으로 설명하라고 미국 검찰에 명령했습니다.
미국 연방법원 기록 시스템에 따르면 페르난도 아엔렐-로차(Fernando Aenlle-Rocha) 판사는 이날 이 같은 취지의 이유개시명령(order to show cause)을 내렸습니다.
아엔렐-로차 판사는‘쌍방가벌성’(Dual Criminality), 즉 스페인과 미국 모두에서 안 씨의 행위가 범죄로 간주되는 경우에만 신병인도가 가능하다며“기소된 행위가 미국에서도 범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 사건이 북한대사관에서 북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경우 미북 간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미북 관계와 관련해 아엔렐-로차 판사는 양국 간 계속되는 갈등과 외교관계 및 평화협정의 부재,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 등을 언급했습니다.
아엔렐-로차 판사는 구체적으로“미국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1950년 6월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지지해 한국에 미군을 파병한 이후 미국은 북한과 군사 갈등을 겪어 왔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러면서 1953년 정전협정 체결은 군 병력 간 적대 행위를 중단시키고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했을 뿐, 미국과 북한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평화를 선언하거나 평화협정을 체결한 적이 없고 현재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남북한이 계속해서 미사일과 포격을 주고 받고 있다”며“2017년 11월 미국은 북한 당국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이어 “미국 의회는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부가 탈북자들을 돕기 위해 조치를 취하도록 장려했다”며“국무부는 탈북자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즉 아엔렐-로차 판사는 북한대사관이라는,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의 외교 공관에서 이뤄진 안 씨의 행위가 미국법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아울러 미국 검찰은 앞서 안 씨의 스페인 송환을 주장하며 안 씨가 미국법인 ‘외국 관료들의 보호에 관한 법(18 U.S.C. § 112(a))’과‘외국 관료들의 납치에 관한 법(18 U.S.C. § 1201(a)(4))’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는데, 아엔렐-로차 판사는 이러한 미북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 관료들이 보호 대상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It is unclear whether the alleged North Korean officials here would qualify for protection under the identified statutes given the ongoing conflict between 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the lack of relations between the two nations, and North Korea’s status as a state sponsor of terrorism.)
그러면서 안 씨가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목적이 대사관 직원들의 망명을 도우려는 것이든, 혹은 검찰의 주장처럼 북한 당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사관의 정보와 컴퓨터를 갈취하려는 것이었든 관계 없이 미국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안 씨는 검찰의 서면 설명 이후 30일 내 이에 반박하는 문건을 제출할 수 있으며, 이후 검찰은 다시 15일 내에 이에 대한 답변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안 씨가 소속된 민간단체 자유조선은 지난 2019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직원들을 폭행하고 컴퓨터와 이동식 기억장치(USB) 등을 탈취한 후 도주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 씨는 해당 사건이 북한 외교관의 망명을 돕기 위한 위장 납치극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5월 스페인 법에 따라 강제 침입과 불법 감금, 상해, 협박 등 4개 혐의에 대해 안 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스페인 송환을 승인한 바 있습니다.
기자 지정은,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