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은 지난 2008년에도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를 전세계에 공개했는데요. 냉각탑 폭파 때와 달리 이번엔 북한이 적극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평가와 함께 북한의 후속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08년 6월 27일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20여년간 북한 핵실험의 상징물로 여겨졌던 냉각탑 폭파 장면은 녹화 중계로 전세계에 타전되며 북핵 폐기에 대한 기대감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추가 검증 시기와 방법 등을 놓고 6자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핵 논의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조치 역시 폭파 장면을 국제사회에 공개했다는 점에서 10년 전 냉각탑 폭파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무게감은 다르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평가입니다.
냉각탑의 경우 2007년 북핵 불능화 조치로 인해 용도 폐기된 ‘빈 껍데기’ 상태였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은 일부 갱도를 여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섭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일시적인 ‘폐쇄’가 아닌 영구적인 ‘폐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미래 핵포기’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 조치를 선제적으로 단행한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냉각탑 폭파가 2007년 10.3합의에 따라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상 조치와 맞물려 진행된 것과는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조치는 비핵화 행동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 총성과도 같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아무 보상도 없이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이에 따라 북한이 자신들이 ‘성의’를 보였다는 점을 부각하며 향후 협상과정에서 미국에게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객관적인 검증 절차가 누락된 북한의 이번 폐기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옵니다.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핵실험장이 완전히 폐기됨에 따라 이에 대한 검증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사실상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순서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경우 6차례나 핵실험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 역사를 파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장소입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일정을 발표하면서 이전에 밝혔던 ‘전문가 초청’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이미 6차례 핵실험을 거쳐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만큼 핵실험장 폐기는 기술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 내에서 북한의 이번 조치만으로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후속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섭니다.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해 이전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10년전과 마찬가지로 관건은 북핵 검증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