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전문가들 “북, 입지 강화 위해 ‘이란 상황’ 활용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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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과 이란의 긴장 상황을 활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무인기 공습으로 이란의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가 사망했다고 밝힌 미국 국방부.

한국 정부는 이와 관련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현수 한국 국방부 대변인 : 현재 정부는 현 미국·이란 사태를 포함하여 중동지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유사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해 나갈 것입니다.

북한은 사태가 벌어진 뒤 이틀이 지난 5일, 관영매체를 통해 이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개인 홈페이지인 ‘태영호의 남북동행포럼’에 올린 글을 통해 북한이 이란의 군부 실세가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숨졌다는 사실이 주민들에게 알려질까 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사태 이후 즉각 반응을 내놓지 않았고 이란 사령관의 죽음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중동지역은 미국의 무덤이 될 것’이라거나 ‘친미 국가들도 미군의 파병 요청에 소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어 미국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는 주장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이란 사령관이 미국의 무인기 공습으로 사망한 소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큰 부담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이번 사건으로 크게 놀란 김 위원장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 핵무기밖에 없다는 확신을 더욱 굳혔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이번 이란 사령관 피폭 사건이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자국 유조선과 무인기에 대한 이란의 공격도 눈 감았던 미국이 이번에는 경고에 그치지 않고 선제 타격에 나섰다는 겁니다.

북한이 이번 당 전원회의 결과 보도문을 통해 ‘전략무기 개발’을 공언했지만 이는 이미 미국의 정찰 범위 안에 들어와 있어 언제든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한반도에도 미군의 전략자산으로 얼마든지 공격이 가능한 드론 무인기가 있습니다. F-22나 F-35같은 미군의 스텔스 전투기도 있고요. 또 미국의 정찰 자산들이 한반도 상공에 지속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더 이상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 같은 상황에도 북한이 도발에 나선다면 미국으로서는 초강경 대응을 할 수 밖에 없고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북한의 편을 들어줄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도발’이라는 선택지를 함부로 꺼내기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이번 사태를 구실로 조기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정면돌파’를 앞세워 미국과의 장기전을 선언했지만 미북 비핵화 협상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며 대북협상에 대한 미국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북한은 미국이 빨리 내부정비를 마치고 대북협상에 집중해주기를 내부적으로 바랄 텐데 그런 집중력이 이란 사태로 인해 떨어지고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으로선 미국이 미북협상에 집중할 수 있게 도발의 수위를 일찌감치 높여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홍 실장은 이번 사태가 없었다면 북한이 겨울을 보내고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되는 2월 말, 3월 초 쯤 저강도로 도발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는 좀 더 이른 시기에 전략무기를 공개하며 미국의 관심을 끌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과 이란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확연히 다른 만큼 이번 사태로 북한이 위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오히려 미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우호 관계인 시리아의 공군기지가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받자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는 등 우방이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미국 측을 비난해 온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