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일방적 해제 안돼...스스로 비핵화 나서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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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의 전직 외교 당국자가 섣부른 대북제재 해제나 때이른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북한이 결국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15일 서울에서 ‘김정은 집권 10년, 결산과 전망’을 주제로 열린 외신 대상 기자설명회.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맡은 이도훈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대화를 중단한 북한이 결국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의 끊임없는 비핵화 대화 요구를 계속 회피할 수 없고, 경제난이 점차 심해지는 상황에 내부 불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도훈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지 1년 밖에 안됐는데 북한이 미국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유일 체제라고 해도 경제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체제 안정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도훈 전 본부장은 다만 북한이 대화에 나서더라도 지난 2019년 하노이 회담 때처럼 부분적인 비핵화 조치를 제시하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협상 주제를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으로 변질시키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북제재와 관련해서는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의 독자적인 제재가 중첩되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이 더 수월하게 핵개발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제재를 풀어주는 등 이른바 ‘지렛대’를 포기하고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는 식의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핵 보유를 스스로의 안보와 경제에 해가 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직접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전 본부장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전쟁 종전선언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이 전 본부장은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정전 체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국민들의 동의와 공감 없는 단순한 선언만으로는 평화를 얻기 힘들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이도훈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종전선언을 해서 평화가 온다면 매일 선언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언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비핵화가 이뤄져서 그 맥락에서 '지금쯤 종전선언을 할 때가 됐구나'하고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전 본부장은 “종전선언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래 평화협정의 첫 번째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만일 종전선언을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정치적 선언’으로서 따로 떼어서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을 입구 삼아 북한을 대화로 이끌겠다는 한국 정부와는 달리, 미국은 종전선언이 비핵화 협상의 결과, 즉 출구가 돼야한다는 입장으로 양측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종전선언을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는 것’으로 규정했다며, 이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도훈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과 그 이듬해 2월 하노이회담 등이 열릴 당시 한국 정부의 북핵 수석대표를 역임한 바 있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