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김일성 회고록, 출판 경위 파악 후 조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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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 내에서 김일성 회고록이 출간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 통일부는 출간 경위를 파악하고 정부 차원의 조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일 한국 내 한 출판사가 출간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김일성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라는 제목으로 모두 8권으로 이뤄진 이 서적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사가 담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한국 내 여러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통일부는 22일 해당 서적이 한국에서 출간된 경위를 파악하고 정부 차원의 조처를 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해당 서적의 출판 경위 등을 파악해보면서 통일부 차원에서 취해야 할,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주식회사 ‘남북교역’이라는 법인은 지난 2012년 합법적으로 북한 도서를 다룰 수 있는 특수자료 취급 인가 기관들을 대상으로 해당 서적을 판매하겠다며 통일부로부터 반입 승인을 받았습니다.

‘남북교역’ 대표이자 사단법인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을 지낸 김승균 씨는 이번에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한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해당 출판사가 김일성 회고록 출간과 관련해 통일부와 사전에 협의하거나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 반입 승인 등을 신청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향후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와 관련해서는 “출판을 목적으로 한국 내에 북한 도서를 반입하려면 통일부로부터 승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해당 출판사가 도서를 반입해 출간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식을 취했는지 등 출판 경위를 보고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해당 서적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지적과 함께, 책에 기재된 김일성의 항일 활동 내용에도 왜곡이 많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2011년 한국 대법원은 ‘세기와 더불어’가 이적표현물이라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고,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사를 30년 넘게 연구한 중국 조선족 출신 유순호 작가는 저서 ‘김일성평전’을 통해 해당 서적이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인 지난 1994년 8월에는 한국의 한 출판사가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하려 했다가 출판사와 인쇄소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대표가 구속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국의 제1야당 국민의힘 소속 하태경 의원은 이날 “김일성 회고록 내용에 속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한국 국민의 높아진 국민의식을 믿고 표현의 자유를 적극 보장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하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김일성 회고록은 상당부분이 허구”라며 미사여구를 동원했다고 해서 김일성 우상화 논리에 속아 넘어갈 한국 국민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류를 금지하더라도 한국은 북한 출판물을 허용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자”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이영환 대표도 해당 서적의 한국 내 출간을 허용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자는 의견에 동의하면서, 다만 한국 통일부가 이와 관련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안에 즉각 대응하지 않는 통일부의 태도가 한국 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신속히 단속할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북한이 무력으로써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안보를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해온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과정에서 계속 강조를 해왔으면서 이번 사안에 같은 잣대를 적용할 것인지 여부가 중요하게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이 대표는 한국 통일부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대북 반출·반입 대상에 ‘정보통신망을 통한 송·수신’까지 편입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을 강행하려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며, 통일부 측이 이번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