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의 전문가들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잇달아 내놓은 담화와 관련해, 한·미 관계의 틈을 파고들어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5일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종전선언과 남북 정상회담 등을 언급한 전향적인 담화를 내놓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한국 내 전문가들은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가 한·미 관계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일종의 이간책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은 북한이 김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한 뒤 이를 이용해 미국의 이른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양측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 보다는 한국과의 관계를 먼저 안정시켜놓는 편이 향후 움직임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라는 것입니다.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북한은 한국 측과 만나는 것에 지금까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 없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오는 현 시점에는 그나마 한국을 통해 미국을 자극하는 것이 남아 있는 유용한 선택지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원장은 다만 북한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남북 관계 진전 국면에서도 비핵화를 진전시킬 의도는 없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종전선언과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을 내건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북한의 이 같은 메시지가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한국 정부 간 관계를 이간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서 비핵화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인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과 타 국가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 결코 ‘이중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국내 정치적 목적의 정상회담, 실질적 평화가 담보되지 않은 종전선언은 당장 한미 간 갈등 사안이 될 것이며, 북한의 또다른 무리한 요구도 이어질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북한의 제안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제언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 부부장이 지난 24일 담화에서는 종전선언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가 25일 담화에선 전향적 태도를 보인 점에 주목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중국이 북한 측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촉구했고, 언제까지나 고립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북한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정 센터장은 김 부부장의 25일 담화로 볼 때 북한이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과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미·중 간 4자 종전선언 및 남북 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폐기의 수위가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의 미국 첨단무기 도입을 완전히 중단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북측 메시지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한 다른 목소리가 엇갈렸습니다.
한국의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부부장의 메시지가 실질적인 남북, 미북 대화와 한반도 비핵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한국의 제1야당 국민의힘은 이날 북한의 태도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평화, 비핵화가 아닌 대화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제안과 요구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도 필수적이라며, 불합리한 요구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양성원,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