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의 북한 내 코로나19 대응 상황 평가에 대한 비난 담화를 낸 것과 관련해 한국의 전문가들은 경고에 방점을 둔 것으로 직접적인 도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9일 관영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름으로 담화를 내고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의 북한 내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감염증 대응 관련 발언을 비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앞서 강경화 장관이 지난 5일 한 신형 코로나 관련 국제회의 연설을 통해 확진자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은 믿기 어려우며, 감염병 방역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북한이 이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평가한 데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 '마나마 대화'):북한은 여전히 신형 코로나 확진 사례가 북한에 없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징후는 그들이 북한 내에 없다고 주장하는 그 감염병을 통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조금 이상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신형 코로나 방역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며, 이른바 ‘최고존엄’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직접 나서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월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도 북한에 신형 코로나 환자가 없다는 것을 유일한 치적으로 내세웠습니다. 강 장관이 그것을 의심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강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그 동안의 행태로 봤을 때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 제기가 있다고 판단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비난 성명을 발표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김 제1부부장은 지난 3월 북한 군의 화력전투훈련에 대한 한국 청와대의 유감 표명, 6월에는 한국 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등을 구실로 여러 차례 한국 측을 맹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다만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장황하고 거칠었던 그동안의 대남담화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발언은 단 네 문장에 그쳐 매우 간결했고 표현 수위도 상당히 조절한 것으로 보이는데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내부 매체에도 게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북한 내 2인자이자 대남총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김여정 제1부부장 명의의 담화로 격을 높여 불쾌함을 강조하면서도 발언 내용은 절제함으로써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북한이 대남도발을 위한 명분을 쌓거나 남북관계 악화를 감수하기에는 북한 내 경제난 등이 심각하고, 미국의 새 행정부와도 협상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의도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려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는 대내외 여건 때문에 남북협력이나 대미협상이 필요한 상황일 것이라며, 내년 초로 예고된 제8차 당대회를 앞두고 신형 코로나 대응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또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대미 총책 뿐 아니라 신형 코로나 방역 등 북한 내부 문제에 있어서도 역할을 분담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가 대남분야 수장으로서의 위치를 대외적으로 재확인시킨 것으로, 역시 직접적인 행동 예고보다는 경고에 무게를 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담화 발표가 북한 내 신형 코로나 상황과 80일 전투, 당대회 준비, 미국의 정권교체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 등 모든 여건을 고려해 이뤄졌을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비건 부장관의 방한 시기에 담화를 낸 것으로 볼 때, 한미 양측에 북한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할 때는 신중을 기해달라고 압박,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 교수는 강경화 장관이 지난 5일에 한 발언에 대한 담화가 9일 발표된 것으로 볼 때 북한 내부에서도 담화 발표 여부를 놓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한국의 제1야당 국민의힘 소속 태영호 의원은 강 장관이 김여정 제1부부장과 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같은 탁자에 앉아 인연을 맺은 사실을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 담화를 발표한 것은 향후 남북관계에서 주역으로 등장할 김 제1부부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계산된 전술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태 의원은 또 한국 국회에서 ‘대북전단 금지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북한이 이미 임기 3년을 넘겨 곧 자연스럽게 교체될 가능성이 큰 강경화 장관을 굳이 겨냥함으로써 마치 김여정 제1부부장의 요구에 따라 강 장관이 해임되는 듯한 상황을 조성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강 장관이 현직에 있는 한 남북대화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내년 초 청와대의 인사교체 일정에 따라 강 장관이 교체되면 마치 김 제1부부장의 압박에 따른 조치인 것으로 간주하며 대화에 복귀하려는 명분을 세우려 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국회에서는 9일 본회의가 열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즉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한 심의가 진행됐습니다.
국회 본회의 심의를 통과하면 ‘대북전단 금지법’이 법률로 확정되지만, 한국의 야당인 국민의힘 측이 해당 법률을 비롯한 3개 법안에 대해 장시간 발언을 이어가며 심의를 미루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즉 ‘무제한 토론’을 신청함에 따라 법안 통과는 다음 회기로 미뤄졌습니다.
한편, 북한은 그동안 북한 내부에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최근 코로나19 비상 방역단계를 초특급으로 격상하고 코로나 19 방역 강화를 위해 국경과 휴전선 지역들에 봉쇄장벽들을 구축하는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