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대북전단 금지법 우려에 “미국 등과 소통할 것”

0:00 / 0:00

앵커 :한국 정부는 대북전단 금지법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4일 밤 한국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7명 가운데 전원 찬성으로 가결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

이 법안 24조는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즉 미화 약 2만7천 달러 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항이 규정하는 ‘전단 등’의 범위에는 대북전단 뿐 아니라 광고선전물, 인쇄물, 보조기억장치 등의 물품 그리고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까지 폭넓게 포함됩니다.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내용에 따르면 음악이나 영상물을 담은 USB와 하드디스크, 쌀, 지폐 등을 허가 없이 북한으로 보내는 경우에도 처벌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 법안은 ‘살포’ 행위의 범위를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배부와 단순히 제3국을 거치는 전단 등의 이동까지 포함시키고 있어 일각에서는 해석에 따라 제3국에서 북한 주민에게 물품을 건네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앞서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한국의 제1야당 국민의힘 소속 태영호 의원은 지난 13일 밤부터 10시간 동안 국회에서 진행한 ‘무제한 토론’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당시 태 의원은 대북전단 금지법을 가리켜 “제3국, 중국 등을 통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필수품 공급까지도 완전히 차단하려는 악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지난 13일):이 법은 한마디로 말하면 제3국, 중국 등을 통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필수품 공급까지도 완전히 차단하려는, 즉 김정은·김여정에게 충성하고 북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려는 악법입니다. 이 악법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태 의원은 법안의 이 같은 부분이 법률적이거나 공식적인 문서 등에서 본래의 의도를 교묘하게 막는 내용을 뜻하는 이른바 ‘독소조항’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초코파이와 한국 화장품이 북중 국경을 통해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야당 의원들은 이 법안이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지난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은 뒤 발의된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반발해왔습니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5년 결정을 통해 민간단체나 민간인의 대북전단 활동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북한의 위협이나 남북 간 비방 금지 합의로써 제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와 여당은 지난 2014년 한국 측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에 북한 측이 고사총 사격으로 대응했던 사례 등을 들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이유로 법안 발의부터 국회 본회의 심의까지의 과정을 강행해 왔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대북전단 살포를 제한하는 이유는 군사분계선 인근 접경지역 주민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낀다고 아우성치고 있을 뿐 아니라 남북 정상 간 합의한 사항을 실효성 있게 지켜야 북한에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외교부는 대북전단 금지법이 국회에서 처리된 다음 날인 15일 미국 내 일각에서 이와 관련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와 소통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영삼 한국 외교부 대변인 :한국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을 기본으로 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을 계속해나간다는 방침입니다.

앞서 미국 공화당 소속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 11일 대북전단 금지법이 공산주의 북한을 묵인하고 북한 주민에 대한 정신적·인도적 지원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미국 의원들의 우려 표명은 개인적인 의견이며, 한국 정부는 인권을 타협할 수 없는 가치로서 어느 것보다도 존중하고 있다고 거듭 밝히면서 대북전단 금지법이 접경지역 거주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도 이날 대북전단 금지법이 한국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과 관련해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국민의 생명권이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대북전단 금지법 주요 내용을 안내하는 설명 자료를 통해 “표현의 자유도 한국 헌법상의 권리지만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안전이라는 생명권에 우선할 수는 없다”며 지난 2014년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 측의 고사총 사격과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의 도발을 초래해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 재산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켜 국가안보를 저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일부는 또 이번 개정안이 최소한의 규제라고 강조하면서 법에 규정된 ‘전단 등 살포행위’와 이로 인한 ‘국민의 생명·신체에 심각한 위험초래’라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중 국경을 통해 USB를 북한에 반입하거나 제3국에서 북한 주민에게 물품을 전달해도 처벌을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면서 제3국을 통해 물품을 단순 전달하는 행위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통일부는 다만 향후 북한이 대남전단을 살포할 경우의 대응수단과 관련해 한국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하면 한국 측의 대북전단 살포도 규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대북전단 살포 규제 입법은 지난 2008년 18대 국회에서부터 추진돼 왔습니다.

한국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대북전단 금지법, 즉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지난 2일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심사를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8일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 이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 심의까지 과반 의석수를 앞세우며 통과시켜 현재 공포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