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의 북한 풍향계] “북, ‘핵군축’ 요구하며 대미 강압전략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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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무용론을 내세우며 핵 억제력 강화 방침을 밝힌 북한. 한국 내에선 미북 비핵화 협상의 문턱을 한층 높인 북한이 향후 미국에 ‘핵군축’ 협상을 요구하며 강압전략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북한이 예고한 ‘새 전략무기’는 미국을 압박하는 핵심 카드가 될 전망입니다.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서울의 김은지 기자입니다.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나선 북한.

한국 외교가에선 북한의 이번 당 전원회의 결정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로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 2017년 신년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올 한 해 북한의 대외전략이 상당히 공세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번 전원회의 결정의 경우 지난 2017년 핵위기 이후 북한이 대외정책 변화를 꾀하며 협상장에 나왔던 지난 2018-19년 신년사와 비교하면 상당히 공세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는 올 한 해 북한 정세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기 어렵게 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북한이 대미 협상전략의 변화를 예고한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노이 회담 당시의 ‘대북제재 해제와 비핵화 동시교환’ 입장에서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인 것으로, ‘비핵화 대 안전보장’ 교환구도를 관철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북한이 말하는 ‘안전보장’ 요구란 한국에 제공되는 핵 억제력 제거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결국 ‘핵군축’을 의미한다는 것이 한국 외교가의 평갑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북한이 이번 당 전원회의 발표를 통해 앞으로 비핵화와 관련된 약속에 얽매이지 않겠다며 강력한 핵 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태도에 따라 억제력의 수준을 조절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전형적인 비핵화 방식이 아니라 핵군축 방식으로 가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핵 보유국’ 전략이라는 점에서 향후 미북협상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사실상 핵·경제 병진노선으로의 회귀로, 북한이 향후 미국에 대한 강압전략 채택을 예고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대남 강경론자인 리선권을 대미, 외교 전선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 역시 본격적인 대미 강경노선을 예고한 것이란 분석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정면돌파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북한이 예고한 ‘정면돌파전’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천명한 것으로, 북한이 향후 핵 보유국 지위를 강화해 본격적인 ‘벼랑끝 협상’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됩니다.

북한은 이 같은 대미 강경기조를 바탕으로 ‘새 전략무기’ 카드를 활용해 미국의 비핵화 셈법 전환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하기 힘든 올해 대통령선거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 대미 협상력을 제고하려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결국 ‘경제의 자력강화’가 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대내용 카드라면 ‘새 전략무기’는 미국을 압박하는 핵심 카드인 셈입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새로운 전략무기의 경우 작년 12월 동창리 엔진시험장에서 실시한 엔진시험과 연관된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며 고체엔진 ICBM이나 다탄두 ICBM일 가능성이 있고 전략미사일 탑재 신형잠수함일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향후 전략도발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시기와 방식을 택해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레드라인, 즉 금지선을 넘는 고강도 도발은 최대한 후순위로 미루면서 억제력의 폭과 강도, 미북 간 합의 파기 여부 등은 미국의 태도와 적대시정책 철회 여부에 따라 조정해 나갈 것이란 관측입니다.

김천식 전 한국 통일부 차관(1월 13일 동북아 핵비확산 국제회의): 북한 역시 어떠한 행동을 취할 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계산을 하려 한다는 점에서 미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지금 당장 초래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하는 대신 상당히 오랫동안 미국을 압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올 한 해 북한은 미국의 입장 변화에 따라 전략도발과 협상의 가능성 모두 열어두면서도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방식의 도발을 통해 몸값을 올린 뒤 미국에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여기엔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반도의 안보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려는 북한의 전략적 계산이 담겼다는 분석입니다.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북한의 이 같은 전략적 입지를 한층 강화시킬 전망입니다.

2019년 들어 심화된 미중 전략경쟁은 향후 장기화되고 구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국 외교가의 관측입니다.

미중경쟁이 격화될 경우 북핵 문제는 미중 패권경쟁구도의 종속변수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과거 중국은 북한 문제를 미중 게임에서 레버리지화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 해부터 중국이 북한을 미중 게임에 이용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은 자신들이 필요할 경우 고강도가 아니라 저강도 차원에서 미국에게 '우리에게 북한 카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봅니다.

미중 전략적 갈등이 다른 사안과 결합될 경우 ‘신냉전’ 상황이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북한은 핵보유 동기를 한층 강화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체제안전판’으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의 장기전을 택한 데는 현실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을 일종의 ‘산소호흡기’로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올 한 해 미국과 한국의 국내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기 어려운 만큼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북핵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극적 반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비핵화를 둘러싼 미북 양측의 힘겨루기가 뜻하지 않은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