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미북 정상 간 하노이회담이 아무런 합의없이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비핵화 의지는 커녕 핵무장 의지를 더욱 노골화하며 미국에 대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올해의 경우 미 대통령선거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사실상 ‘핵 보유국’이라는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내부적으로 핵능력을 고도화하면서 강온전략을 통해 대선국면에 돌입한 미국을 상대로 셈법 전환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이른바 ‘전략적 숨고르기’의 시간이자 ‘새 판을 짜기 위한 과도기’로 미 대선국면을 활용한다는 분석인데요.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비핵화 협상 무용론을 주장하며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한 북한.
한국 외교가는 북한의 대미 압박 시간표가 미국의 대통령선거 혹은 그 이후 국면을 상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에다 북한의 올해 국내정치일정(당 창건 75주년/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마지막 해)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북한으로선 대선국면에 돌입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새로운 셈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기보단 당분간 내부 안정과 상황관리에 역점을 두려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의 대내 정세와 관련해 미국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며 내부 결속과 경제성과 창출을 위한 주민 독려를 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연철 한국 통일부 장관(2/18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 북한은 현재 백두산혁명전적지 답사,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 단체·부문별 궐기대회 등 내부 결속과 경제성과 창출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사태는 북한이 올 한 해 대외관계보다 내부 상황관리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내부 필요에 의해 미국과 잠정적 합의를 하더라도 구속력있는 합의는 미 대선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 또는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 내에선 이에 따라 북한이 오는 11월 미 대선 때까지 미국의 국내정치상황 등 정세 추이를 지켜보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핵능력을 고도화하며 ‘몸값 올리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대선국면을 활용해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시간을 벌며 향후 있을 담판에서의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한민구 전 한국 국방부 장관(1/16 한국국가전략연구원 국제회의): 북한은 앞으로 '핵 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며 핵군축 협상을 제기할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이러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연이은 군사도발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끌어올림으로써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를 인정받고자 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당 전원회의 결정을 통해 “강력한 핵 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핵 억제력 유지를 전제한 대미 억제전략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새로운 ‘정면돌파노선’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미북 교착상태와 대북제재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자강력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다만 미국을 향해 ‘충격적 실제행동’을 예고하면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습니다. 미국의 태도와 국내정치상황 등 향후 1년간의 정세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관세 전 한국 통일부 차관(1/10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토론회): 미국의 정치 상황과 대선 판세에 따른 불확실성이 많고 주변 정세의 추이에 따라 강온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응하겠다는 유보적 자세를 보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새로운 길'이란 단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의 대응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융통성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은 이에 따라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의 강대강 대결국면 속에 대선국면에 돌입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강온전략을 구사하며 셈법 전환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도발과 대화 양면전략을 구사하면서 미국의 대선국면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 전반적으로 북한의 정책을 보면 일종의 '버티기'로, 오는 11월 미 대선까지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이는 김계관 담화에서 나왔듯 북한이 지난해 미국에 요구한 이른바 발전권과 생존권을 선제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한 어떠한 합의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최소한 오는 11월까지 가겠다는 것이죠.
필요할 경우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지만 이 역시 시간벌기용일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제재 완화 등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핵담판’이기 때문입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북한은 언제든 ‘실제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신형무기시험이나 저강도 무력시위와 함께 기술적 준비가 갖춰지는 대로 ‘명분’을 만들어 전략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동계훈련기간이나 한미 연합훈련 재개 시 이를 빌미로 단거리 전술유도탄이나 방사포를 이용한 군사훈련 또는 신무기 개발시험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며 당 창건 75주년 계기 인공위성 발사나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의 열병식 등장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단 미국의 레드라인, 금지선에 해당하는 고강도 도발의 경우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강력한 반발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추가 제재 결의,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제한, 향후 대미 협상카드 부재 등 북한이 치러야 할 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은 올 한 해 미 대선국면을 ‘전략적 숨고르기’의 시간이자 ‘새 판을 짜기 위한 과도기’로 적극 활용하면서 ‘새 전략무기’ 카드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북한은 미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말까지 자체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미국의 ‘레드라인’의 경계에 머물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하는 행보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체제안전판이자 대미 압박견제용으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북 협상이 아닌 과거 6자회담이나 새로운 형태의 다자 협상틀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장기전을 예고하며 자력갱생과 핵 억제력, 외교전선 강화라는 이른바 ‘북한판 전략적 인내’를 국가생존전략으로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의 이번 당 전원회의 결정의 경우 병진노선으로의 복귀는 아니지만 '조건부 병진노선'에 가깝다고 보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북한판 일종의 전략적 인내정책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이란 결국 ‘전략적 핵 억제력 강화’ 기조 하에 사실상의 ‘핵 보유국’의 지위를 굳히면서 미국과의 대결 구도에 입각한 동북아의 신냉전을 염두에 두는 장기 전략구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한국 외교가의 평가입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협상장으로 견인하지 않을 경우 자칫 비핵화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윱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