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미북 상이한 비핵화 셈법 조율이 관건…협상 공전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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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향후 재개될 미북 실무협상은 양측의 상이한 비핵화 셈법 조율이 최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한국 내에선 비핵화의 개념과 방법론 등을 둘러싼 양측의 간극이 여전히 큰 데다 첨예한 미중 경쟁국면과 맞물리면서 협상이 공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서울의 김은지 기자입니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멈춰있던 한반도 비핵·평화구축 논의가 미북 정상간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재개될 전망입니다.

한국의 외교가는 그러나 미북 양측 모두 올 연말까지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대화를 이어가겠지만 비핵화의 방식과 방법론 등을 둘러싼 양측의 간극이 여전히 큰 만큼 향후 협상에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홍균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7월 17일 한반도미래포럼 토론회): 북한이 최근 한미 연합훈련과 실무회담을 사실상 연계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에 이달 중이나 8월 훈련기간 동안 실무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적고 그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무회담이 개최되더라도 하노이회담 이후 비핵화에 대한 미북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없는 만큼 쉽사리 진전을 이룰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관건은 미북이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방안을 도출하느냐 여붑니다.

문장렬 국방대 교수 (4월 17일 통일연구원 학술회의): 북한은 지금까지 비핵화 정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말로만 '완전한 비핵화'라고 했지 소위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정상회담이나 공식문서로 밝힌 적이 없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정의가 없다보니 비핵화를 달성하고자 하는 로드맵도 당연히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지난해 6월 미북 정상이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경우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 규정과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실무협상에서 난관이 예상됩니다.

한국 내에서 실무협상 시작부터 양측이 ‘디테일, 즉 세부사항의 함정’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향후 재개될 미북 실무협상에서 양측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가 북한 비핵화의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북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의 대상과 방법, 일정표와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문제는 미북 양측의 상이한 비핵화 셈법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입니다.

북한은 현재 ‘최소 억지’ 수단으로의 핵까지 포기하려면 조선반도 전체가 비핵화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 '조선반도 비핵화'란 표현은 미국의 핵우산,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핵 영향력을 제거하지 않는 한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런 저런 요구를 하면서 핵 보유의 구실로 삼을 소지가 많습니다.

결국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란 핵 보유국으로서 핵 억지력을 보유한 채 미국과의 핵군축도 상호적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 한국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북한은 비핵화 개념의 모호성을 유지한 채 핵탄두를 포함한 핵능력을 보유하며 단계적 접근을 고수함으로써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서의 ‘핵군축’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북한이 올해 4월 개정한 헌법 서문에 ‘핵 보유국’이란 표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합니다.

한국 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밝힌 이른바 ‘핵무기 4불 원칙’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미북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삼고 나선 것도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기싸움으로, 시간을 끌며 미국을 압박해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비핵화 이행과정에서 최대 난제로 꼽히는 사찰과 검증 역시 북한은 ‘주동적 비핵화 조치’를 운운하며 거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신고나 검증, 구체적 실행 조치 등에 대한 합의를 거부한 채 미국의 상응조치에 맞춰 단계적, 자의적으로 핵폐기를 추진하려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북한 전역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찰은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습니다. 그런 만큼 북한은 이번에도 핵심 핵 역량인 핵무기와 핵물질에 대한 검증은 마지막 단계로 미루려 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은 ‘2019년 북한의 안보정세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체제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는 순간까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사찰, 폐기를 최대한 미루는 지연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이 이 같은 ‘셀프 비핵화’ 조치, 즉 자의적 비핵화 조치를 고수할 경우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능력의 일부만을 내주면서 보상을 받아가는 ‘부분적 비핵화’로 귀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국 내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올 연말까지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비핵화 협상이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북 양측 모두 국내 정치적 요인을 감안할 때 대폭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긴 어려운 만큼 연말까지 미북 간 실무협상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내년 한반도 정세는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정인 한국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5월 28일 외신기자간담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협상 시한인 올 연말까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2017년 상황보다 더 악화된 재앙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If we reach in a December deadline and no solution comes out, then there would be catastrophic outcome much worse than 2017.)

북한은 이미 단거리 미사일 발사 카드를 통해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던졌습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 '새로운 길'이란 경제적으로는 자력갱생, 외교적으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군사적으론 궁극적으로 핵보유 능력을 과시할 것인데 현 단계에선 연말까지 기다린다고 했으니 재래식 군사력, 첨단 군사력을 강조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죠.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역시 당분간 국내 문제에 정치적 자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냉각기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임수호 책임연구위원은 대선경쟁이 시작되면 미북 협상은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는 만큼 앞으로 미북 간 대타협이 가능한 시간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관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산적한 국내 현안을 제쳐두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막대한 정치, 외교적 자산을 투입할 의지가 있느냐입니다.

한국 내 일각에선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 전까지 미 본토를 겨냥하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수준에서 상황 관리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교착국면이 길어질수록 북한이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상대로 새판짜기에 나설 가능성, 즉 전략적 도발을 선택할 가능성 또한 높아집니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북한은 협상이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매개로 자주를 보장받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려 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역내 외교안보환경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가에선 현재 미중이 벌이는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분쟁이 아닌 향후 장기간에 걸쳐 지속될 미중 간 패권경쟁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은 2017년 12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를 시작으로 국방전략(NDS)보고서, 핵태세검토(NPR)보고서, 인도 태평양전략보고서(IPSR)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전략적 경쟁국, 또는 수정주의 국가로 지목하고 이들의 위협에 적극 대처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만일 미국이 NSS보고서에서 밝힌 대로 중국을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에 대한 현상타파 경쟁자로 보고 적극 대응할 경우 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충돌, 특히 아시아 국가들 간의 대리 세력경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미중 경쟁이 격화될 경우 북핵 문제는 미중 패권경쟁구도의 종속변수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내에선 북핵 문제가 중국이 한반도에서 미국을 상대로 펼치는 전략게임의 대리전으로서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중 간 첨예한 갈등국면에서 이뤄진 지난 달 북중 정상 간 만남이 단적인 예입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과의 대립구조가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을 통해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자국의 영향권 하에 확실히 붙잡아 두고자 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중국은 이를 통해 향후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 등 일련의 한반도 정세변화과정에서 자국의 역할과 비중을 확대하고자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북한 역시 이 같은 미중 간 틈새를 이용해 북핵 협상국면에서 최대한 시간벌기를 하며, 자신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고 한미동맹의 균열을 꾀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향후 재개될 비핵화 협상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등 미국 내 상황과 미중 경쟁이 미칠 영향 등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하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한국의 외교가는 이에 따라 북핵 협상이 자칫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부분적 비핵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꿀 정교한 비핵화 로드맵, 이행방안을 만들어 미국 등 관련국들과의 협의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는 결국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안전보장 논의로 이어지는 만큼 북한이 ‘핵무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외교·군사적 환경조성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북한이 기존의 핵무기 전체를 폐기하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선 미중을 포함한 동북아의 안전보장체계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한국이 미중 양국은 물론 동북아 국가들과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전략대화를 활성화해 평화체제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의 경우 기존 안보구도의 변화로 이어지는 만큼 이에 대한 한미 간 긴밀한 조율과 협의 역시 필수적입니다.

한국의 외교가는 무엇보다 북핵 문제의 경우 다른 사안에 비해 미중이 상대적으로 협력할 여지가 있는 만큼 미중 양국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견인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이 동북아 지역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하고 자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전재성 교수는 북핵 문제는 비단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지정학적 문제를 둘러싼 협력이라는 점에서 미중관계 변화의 큰 전기가 될 수 있다며 북핵 문제를 미중의 협력사안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