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북한 비핵화 어디로 가나?] ① 김숙 전 대사 “대북제재, 북 비핵화 견인 유일 수단…제재 강화 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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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저희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새해를 맞아 북한 비핵화의 향방을 가늠하는 한국 전문가 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총 3회에 걸쳐 진행될 전문가 인터뷰, 오늘은 그 첫번째로 김숙 전 유엔대사 편을 전해드립니다.

목용재 : 대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지난 2018년과 2019년, 두차례에 걸쳐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됐지만 북한 비핵화 문제는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을 돌아봤을 때, 현재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돼 있는 근본 원인,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숙: 지난 2018년 2월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까지 거치면서 2018년 상반기의 분위기는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착시'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정의하는 비핵화에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 등을 요구한 것도 비핵화 협상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 분위기가 급반전됐습니다. 미북 간 전략적인 목표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양측의 전략적 목표가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죠. 북한은 미국이 정의하는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또한 미북은 신뢰관계를 전혀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신뢰가 조금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협상이었기 때문에 그 형식이 정상 간 이뤄지는 '톱 다운' 방식이든, 실무협상이든 어려웠던 겁니다.

목용재 : 미북 간의 비핵화 정의에 대한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대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정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숙: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확연합니다. 예전엔 CVID, 지금은 FFVD입니다. 즉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완벽한 핵무기의 철폐 또는 핵 프로그램의 철폐입니다. 한미 모두 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데요. 북한은 비핵화에 동의하는 척 하지만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핵 군축을 하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습니다.

목용재 : 올해 미북 비핵화 협상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최근 내놓은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텐데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핵 군축'을 언급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숙: 북한이 핵 군축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북한은 이미 과거부터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쳐왔고 최근들어 이를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이 간접적으로 핵 군축 의사를 내비쳤을 때, 이에 대해 '위장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했었습니다. 지난 해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당시에도 북한의 입장은 핵 군축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핵화는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프로그램의 철폐를 의미합니다. 핵 군축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감축시키겠다는 것이고요. 북한이 말하는 핵 군축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불법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북 간의 핵 군축 협상이란 단어 자체가 성립 되지 않는 겁니다.

목용재 :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핵화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 있습니까?

숙: 미북 실무협상과 정상회담이 진행되기 전, 양측이 서로 이른바 '말 폭탄'을 주고받을 당시에는 맥시멈 프레셔(Maximum Pressure), 최대의 압박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국면이 전환되면서 다시 여러 제안들이 나오는데요. 북한에 대한 맥시멈 프레셔를 더 강화시키자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매시브 프레셔(Massive Pressure), 대규모의, 거대한 대북 압박이라는 표현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아직 북한은 완강하게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양자차원의 대북제재 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 대북제재의 일부 해제를 요구하며 북한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대북제재의 영향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도 현재로서는 대북제재가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입니다. 대북제재는 유지돼야 합니다.

목용재 : 대북제재 강화를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있습니까?

숙: 물론 비군사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여전히 북한에 원유와 정제유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대북 유류 유입량이 제한돼 있는데 이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컨더리 보이콧, 즉 제재 대상인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들을 압박하는 조치와 해상에서의 불법 선적들에 대한 단속 강화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용재 : 미국은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고 계기마다 실무협상과 물밑 접촉을 벌이며 서로가 요구하는 바를 이미 파악했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북한 비핵화 합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숙: 현실적 비핵화 합의보다는 합리적인 비핵화 합의라는 표현이 나을 듯 합니다. 현재 비핵화 협상 자체가 교착 상태에 있지만 한미의 비핵화 원칙을 낮추거나 훼손하면서까지 합의를 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북한이 동의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세부 절차는 단계적으로 밟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용재 :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에 제공할 '당근'으로 고려해 볼만한 것은 무엇이 있다고 보십니까?

숙: 북한이 현재 미국에 적대정책 포기와 새로운 셈법을 요구해 놓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제공하는 조그만 경제적인 지원, 즉 인센티브로서의 '당근'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북한에 당근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당근으로 인해 제재 효과 자체가 약화될 수 있고 이 당근 자체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조를 허물고 제재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목용재 : 북한 비핵화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기된 방안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들과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단계적으로 맞바꾸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숙: 기본적으로 협상이라는 것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상응조치를 단계적으로 맞바꾸자는 것은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제가 있습니다.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북한이 동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기반 아래 여러 세부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런 원칙에 대한 합의 없이 상응 조치만을 나열하고 협의하면 북한은 그동안 구사해 온 살라미 전술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주고 받는데 20~30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북한 비핵화 협상은 비핵화가 아닙니다.

목용재 : 일종의 스냅백 성격의 조항을 넣어 비핵화 합의를 이루자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숙: 스냅백 조항이 없어서 합의가 안 된 것이 아닙니다. 스냅백은 언제든 협의를 진행하며 넣을 수 있는 조항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되돌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합의문에 스냅백 조항을 넣고 안심하며 무리하게 합의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했다가 환불하는 것과 다릅니다. 북한이 합의를 어겨 스냅백 조항으로 합의 자체를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촉발시킬 것입니다.

목용재 : 미북 비핵화 협상팀의 진용도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을 시작할 때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가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십니까?

숙: 북한 핵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부터의 외교 진용을 본다면 미북이 각각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핵 무기를 꾸준히 개발해왔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를 저지하는데 실패해 뼈아프게 자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의 지도자, 북한 정권의 문제입니다. 통일전선부, 외무성 같은 협상 주체들은 단순히 하위 개념일 뿐입니다. 하노이 회담 직전 미북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구체적인 합의를 촉구했을 때 북한 측은 지도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며 이를 미뤘습니다. 북한 협상팀은 재량권이 없다는 것인데요. 이 같은 부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협상팀 부처가 바뀐다는 것은 흥미롭게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북한의 협상 기조 등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용재 : 지난 2018년 국제외교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 외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숙: 북한에서 3대 세습이 이뤄졌습니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세습 체제 하에서 북한의 근본적인 노선은 변경될 수 없습니다. 그 노선은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겠다는 것이지요. 김일성 주석 당시부터 추구한 핵무기 보유 정책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의 외교 전략을 기본적으로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 집권 시절 2번,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4번의 핵실험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점만 봐도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에서의 정책, 전략을 답습하며 더 완강하고 강화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용재 : 앞으로 비핵화 정상회담 혹은 실무회담 등 미북 간의 비핵화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시는지요? 마지막으로 2020년 미북관계 전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숙: 며칠 전 한 토론회의 사회자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참석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즉석 여론조사를 했는데요. 올해 전망을 물었습니다. 제가 세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죠. 첫째, 미북 간 긴장이 고조돼서 충돌하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둘째, 치명적인 충돌은 없겠지만 커다란 진전은 없고 현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셋째, 북한 비핵화에 대한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이렇게 세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했습니다. 세번째 선택지를 꼽은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90% 이상이 두번째 선택지에 손을 들었습니다. 북한은 정면돌파를 강조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습니다. 수사에 그치는 선에서 끝날 것 같기도 한데요. 북한으로서도 미국에 정면 대응하는 것은 여러 부담이 있을 겁니다. 향후 상황을 신중하게 봐야겠지만 미북은 현재의 상황을 관리할 것입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북한이 한국에 모멸감을 주면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을 위한 압박을 가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북한이 강도 높은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목용재 : 대사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 RFA 신년 기획 전문가 인터뷰 "북한 비핵화 어디로 가나?" 내일은 그 두번째로 전 통일부 차관 김형석 박사 편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