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힐 “미북, 최종 목표에 합의한 후 ‘단계적’ 비핵화 가능”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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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미북 간 비핵화 대화를 재개하려면 미북은 우선 협상의 최종 목적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포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미국의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측과 최종 목표를 포괄적으로 밝힌 문서에 먼저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힐 전 수석대표 : 북핵 문제를 단계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미북은 먼저 최종 결과가 무엇인가를 비롯해 대화의 전반적인 틀에 대한 성명(general framework statement)에 합의해야 합니다.

힐 전 수석대표는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대화를 재가동하려면 북한 비핵화의 목표가 핵 동결과 감축(rollback) 등 한반도 긴장고조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제언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윌리엄 번스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대표는 지난 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중요한 염원(important aspiration)이지만, 북핵 위험을 낮추는 것이 미국의 현실적 목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Full denuclearisation remains an important aspiration, but the more practical challenge is to reduce nuclear danger now.)

번스 전 부장관은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와 핵 물질, 그리고 핵시설 목록에 근거한 검증과 사찰을 요구하며 영변 핵 시설의 완전한 폐기 등 북한의 현재 핵 능력 감축(rollback)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 미사일 기술 확산, 억압적인 내부 통치와 같은 위협적인 행동은 한꺼번에 개선되지 못하겠지만, 북한과 광범위한 기술 대화에 나서고 다른 주요 관계국들과 협력하며 힘들고 긴 외교적 협상을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번스 전 부장관은 주장했습니다.

힐 전 6자회담 수석대표도 자신의 북핵 협상 경험으로 미뤄 북한과의 즉각적인 ‘큰 합의’ 즉 ‘빅딜’은 가능성이 없다며, 동결과 감축을 목표로 한 단계적 비핵화 협상이 현실적인 차선책이라고 말했습니다.

힐 전 수석대표 : 미국은 북한의 영변 (핵폐기) 제안의 범위와 내용에 대해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보다) 좀 더 세밀하게 질문하고 파악해야 합니다.

영변 핵 시설이 노후화 돼 더 이상 가치가 없고 폐기 수순에 도달했다는 평가와 관련해 힐 전 수석대표는 북한이 영변 핵 단지에 우라늄농축시설을 추가로 건설하고 원자로 시설 관련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영변 핵사찰을 주도한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협상의 구체적 단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비핵화 범위(scope of denuclearization)’에 합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비핵화 첫 단계에 먼저 합의하고 그 목표를 달성한 후에 다음 단계를 논의하는 과거 방식을 취해서는 안된다며, 핵무기와 핵물질, 생산시설 등의 불가역적인 폐기와 관련한 이정표(milestones on the road) 전체에 대한 합의가 협상 시작부터(outset)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박사도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완전한 비핵화가 최종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포괄적인 이정표(comprehensive roadmap)를 마련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달성해 나가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북한의 핵 동결이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세이모어 박사는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선택할 조짐은 파악하지 못했다며, 한국은 북한이 미국과 실무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이날 일괄타결 방식의 ‘빅딜’이나 단계적 비핵화 등 협상의 방식보다는 북한이 비핵화를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