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소재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의 주민 수십 만 명이 방사성 물질 유출과 물을 통한 확산 위험에 처해있다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이정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인권조사기록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21일 발표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 보고서.
보고서는 북한이 지난 2006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총 6번에 걸쳐 단행한 핵실험의 여파로 지하수 등 물을 통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확산됐을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면서 풍계리 핵실험장 반경 40km 이내 지역 그리고 이를 가로지르는 장흥천과 남대천 인접 지역의 8개 시∙군이 방사성 물질 오염 위험에 처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 북한의 2008년 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 내 인구를 합산하면 약 108만 명이고 이 중 25%만 영향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약 27만 명이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추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주민 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 인접국 국민들도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생산돼 물을 통한 방사능 오염에 노출된 농수산물과 송이버섯 등 특산물이 이들 국가에 밀수되거나 불법적으로 유통된 정황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북한 당국에 핵 개발과 핵실험을 즉각 중단할 것,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것 등을 촉구했습니다.
또 한국 정부는 피폭 검사를 희망하는 풍계리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전원에 대한 검사를 재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중 북한의 핵실험이 시작된 2006년 이후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 거주한 탈북민은 총 881명입니다.
지난 1998년 탈북한 한봉희 100년한의원 원장은 길주군 출신으로서 한국 내 동향 출신 탈북민들을 진료해왔습니다.
한봉희 원장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이들 중 다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했다고 증언하며 정부 차원의 피폭검사 재개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한봉희 100년한의원 원장: (길주군 출신 분들이) 너무 다리가 아프고 온몸이 계속 쑤시고 아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원 가서 검사하면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고 합니다. 혈액검사도 정상이요, 뭐도 정상이요, 두통이 있는데 아무리 검사를 해봐도 원인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5, 6차 핵실험의 위력이 수소탄에 가까웠고 여진과 갱도 함몰이 뒤따랐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5차와 6차 핵실험의 위력이 거의 수소탄에 가까웠고 당시 여진이 5차례 이상 있었고 갱도가 함몰되기도 했습니다. (암반에) 금이 가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틈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눈, 비가 오고 장마, 태풍도 지나갔을 것이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로 스며들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면서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피폭의심 탈북민 대상의 검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북한이 완전히 봉쇄된 지하에서 핵실험을 진행해 방사성 물질이 지상으로 노출되지 않았다면 이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확산됐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핵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온도는 1만 도 이상이라며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 암반을 구성하는 화강암이 녹아내린 후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품은 채로 굳어졌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 굳어진 화강암이 깨져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경우에도 지하수가 바위 틈으로 흘러내려가는 과정에서 금속성인 방사성 물질이 암석에 붙어 농도가 상당 부분 희석되기 때문에 많은 양이 전파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에 더해 일상 속 환경방사능의 영향 등을 감안하면 탈북민의 피폭 증세가 핵실험 때문인 것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하면서도 북한과 합의가 될 경우 핵실험장 주변 지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제대로 검사를 하려면 길주 지역 전체에 대한 검사를 해야 되지만 북한이 그걸 반대하니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성은 있습니다. 북한과 협상이 되면, 또는 나중에 통일이 되면 그 지역에 대해서 환경영향평가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한국 통일부가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의뢰해 지난 2017년과 2018년 총 40명의 방사능 피폭의심 탈북민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 결과 9명, 즉 약 22.5%의 검사자들에게서 방사선 피폭 흔적이 검출된 바 있습니다.
당시 한국원자력의학원은 방사선 피폭과 인과관계를 가지는 질환은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도 검사 대상자들에게 검진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받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기자 이정은,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