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북한 비핵화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북한과 상호안전보장 방안을 모색하고 가능한 것부터 실현해나가는 접근을 통해 장기적으로 '사실상의 비핵화' 효과를 거둘 것을 제안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13일 발표한 ‘북한의 전략국가론과 핵무기 고도화' 보고서.
보고서는 2017년과 현재 북한 핵무기 고도화에 대한 인식,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인식 등에 있어 분명한 변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이 ‘1차 핵무기 고도화 시기’인 2013년 3월부터 2017년 11월 사이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확보를 위해 사활적으로 몰두했지만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2019년부터 ‘2차 핵무기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소위 화성-15형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온전한 전략국가 대접을 받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대미 압박,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신형 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북한이 고강도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부분, 미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며 북한 문제를 미국 정책의 우선순위로 끌어올린 부분, 2차 핵무기 고도화 추진을 통해 위협적인 무기를 보유한 부분,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중국ㆍ러시아와 공동 전선을 펼치는 부분 등은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진 점이라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현재 “비핵화의 원칙을 입구로 삼아 북한을 압박해 들어오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것을 대부분 공감한다”며 “(비핵화)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비핵화로 견인할 수 있는 ‘포괄적 입구’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북한ㆍ한국ㆍ미국이 상호안전보장의 입구를 모색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과 한국, 미국이 협상을 통해 서로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상호 동시적으로 취할 수 있는 안전보장의 방안들을 가능한 것부터 실현해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사실상의 비핵화’ 효과를 획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앞서 통일연구원은 지난 3월 9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 국정과제 추진방향' 보고서에서도 “북핵문제의 원칙과 현실 사이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최종목표라고 해도 비핵화는 단계적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군비통제나 군축 등 보다 현실적인 의제를 제시하며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단기간에 이루기 어렵다며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동선 고려대학교 교수는 지난 5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이 개최한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 변화’ 포럼에서 발표에 나서 “협력 혹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기 어렵다”며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은 봉쇄”라고 밝혔습니다.
이 교수는 “소련이 (미국의 봉쇄 전략을) 수십 년간 버티다 체제 모순 때문에 결국 전향적인 자세로 나왔듯 한국 역시 (봉쇄 전략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내적 변화를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동선 고려대학교 교수(5일): 압박을 통해서도 비핵화를 하기 어렵고 그 다음에 협력을 통해서도 어렵고 그러면 실행 가능한 비핵화 방안은 무엇이냐. 저는 사실 좋은 방안은 없다고 보는데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이 봉쇄라고 생각합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지난 3월 29일 니어(NEAR)재단이 개최한 ‘2023 니어워치 포럼’에서 인사말을 통해 “북한은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를 향한 발걸음이 약 90%까지 온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신 전 대사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비핵화에서 억지로 중점을 옮겨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자 한도형,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