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최근 중국판 틱톡, 즉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더우인에, 온라인 게임에 푹 빠진 북한 유학생의 동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 젊은이들의 온라인 게임 실태에 대해서도 새삼 관심이 주목됐는데요, 이와 관련해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중국판 틱톡으로 불리며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더우인’. 이 더우인에 접속해 한자로 ‘북조선 유학생 오락’이라고 검색을 하면 다양한 동영상이 뜹니다.
동영상에는 북조선, 즉 중국 내 북한 유학생으로 지칭된 학생들이 새벽 3시가 넘은 시간까지 밤새워 온라인 게임을 한다거나 이러한 이유로 수업 시간에 자는 모습, 또 수업 중에도 몰래 게임을 하는 모습 등이 공개돼 있습니다.
이 영상을 두고 실제 북한 학생인지 진위와 더불어 북한 학생과 젊은층의 컴퓨터 및 스마트폰, 즉 지능형 손전화를 이용한 게임 실태에도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북한 평양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한 김 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 김 씨는 2일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통화에 해외에 머무는 북한 학생들의 경우 생활 환경 측면으로 온라인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들 가능성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김 모 씨(가명, 음성 변조)] 그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 게임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여가를 즐겨야 하는데 북한에서 감시도 심하고, 조직 내에서 외부 활동이라든가 이런 걸 상당히 금하거든요. 그러면 이 학생들이 유학 기간을 무사히 마치려면 가장 무난한 방법은 게임을 하는 거예요. 그것 자체는 크게 정치적인 색깔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게임을 안 한다면 현지인들하고 다니면서 술도 마시고 사람도 만나고 놀아야 하는데, 이런 (외국의) 문화적인 흡수나 영향을 받는 것을 (북한 당국은) 상당히 싫어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해외에 나간 친구들일수록 게임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결국 북한 당국이 폐쇄적인 체제 유지를 위해서 해외 유학생들이 현지 문화와 동떨어진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때문에 외부 친교 활동보다는 기숙사 등에서 홀로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외 온라인 게임을 접한 대학생들로 인해 최근에는 북한 게임 문화를 주도하는 주축마저 변화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 내 게임방 운영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북한에서 게임과 관련했던 탈북민 1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북한 내 게임 동향을 연구한 이지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이 연구위원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과 통화에 “과거에는 중국 국경 접경 지역에서부터 밀수 등으로 북한에 새로운 게임이 확산했다면 최근에는 해외 게임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평양 초엘리트 대학생들을 통해 새로운 게임이 전파되는 추세가 확연하다”고 전했습니다.
[ 이지순] 최근에는 게임 문화 자체를 선도하는 게 평양 초엘리트 대학생들이예요. '아 이렇게 하니까 재미있더라...' 그게 한 몇 달 정도 접경으로 퍼져 나가는 거죠. 왜냐면 그 친구들이 방학 때 집에 가잖아요. 방학 때 집에 가서 고향 친구들 만나서 전파하는 이런 방식인 거예요.
북한에서 온라인 게임이 유통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당시 북중 국경 지역에서 일본산 콘솔 게임기가 거래되면서 온라인 게임이 등장했고, 2009년 휴대폰 즉 손전화가 등장해 2011년부터 주민들에게 상용화되면서 모바일로도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게 방식이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북한에서 온라인 게임 대중화 물꼬를 튼 건 2014년 김일성종합대학이 개발한 상식 퀴즈 앱 ‘힘’이 큰 인기를 끌면서였습니다.
지난해 9월 한국 KDB미래전략연구소 개발금융연구센터가 내놓은 ‘최근 북한의 스마트폰 게임 활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 앱은 북한 내에서 200만 달러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대단한 수익을 거두면서 IT 개발자들 게임 개발 욕구를 자극했고, 이후 북한에서는 자체적으로 무술 시합이나 여관 경영 모의실험, 전투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이 잇따라 출시됐습니다.
또 이러한 흐름을 타고 북한에서도 온라인 게임이 시대별로 방식과 유행을 달리하며 학생과 젊은층 사이에 최신 문화를 선도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7년 생으로 2016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정현철(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는 지난달 26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통화에 초등학교 때 이미 아버지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게임을 접했고, 이후 북한서 연령별로 다양한 게임을 즐겼다고 털어놨습니다.
[ 정현철(가명)]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그때는 컴퓨터 게임보다도 컴퓨터 게임 같은 경우에는 전기 사정 때문에 많이 못 했고요, 배터리로 할 수 있는 방법의 게임... 그 게임기를 TV에 갖다 꽂아서 게임을 했는데 콘드라라고 했던가. 총 한 발 나가다가 두 발 나가다가 뭘 먹으면 몇 발씩 한꺼번에 나가는 게 있어요. 그것도 있고 닌자라는 게임도 있었고. 2013년 2014년 때는 또 삼국지가 한창 유행이었어요. 그때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게임을 좀 많이 했죠.
이와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외국 온라인 게임 역시 불법 복제본으로 북한 학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다만 불법 복제본이 유통되는 과정에는 게임 용량을 줄이기 위해 내용물이 일부 변형되기는 했지만, 게임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 이지순] 북한 내에 언락된 게임이 들어가면 게임 용량이 너무 크면 유통되기 어렵기 때문에 용량을 좀 줄인 상태로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앞의 시작 부분 영상이라든가 이런 걸 좀 삭제 해서 용량을 줄이고, 타이틀이라든가 몇 가지 중요한 주인공 이름, 언어 등 이런 것들을 코딩으로 바꾸는 거죠. 그래서 공식으로 유통되는 게 있고요, 그것과는 상관없이 개인 간에 아예 불법으로 유통되는 게 있어요. 대부분은 불법이죠, 유통 자체가.
이렇게 비법과 불법 사이에 유통된 온라인 게임은 내부 인트라넷 이외에 인터넷 사용이 금지돼 있고 네트워크 환경이 열악한 북한의 상황에도 여러 명이 모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에 최적의 환경’을 구축해 학생과 젊은이들의 재미를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즉 한 공간에 노트북 여러 대를 두고 랜 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다인 대결 게임’까지 가능하도록 게임의 묘미를 극대화한 겁니다.
[ 정현철(가명)] 북한 게임이라는 건 한계가 있어요. 우리처럼 모바일 게임이라고 해서 끝도 없이 막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 게임은 그렇게 안 돼 있고요, 다 끝이 있는 게임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걸 못해 봤으니까 (처음 접하면) 대게 궁금할 거예요. (북한 게임 방식으로는 절대) 못 접하죠.
김 씨에 의하면 최근에는 북한 학생들도 러시아와 중국, 미국, 한국 등 전 세계 젊은이가 즐겨하는 워크래프트3에서 파생된 도타(DOTA) 게임을 즐겨한다고 귀띔했습니다.
[ 김 모 씨(가명, 음성 변조)] 북한에서 PC (온라인) 게임은 일단 도타(DOTA)라는 게임이 가장 유명합니다. 세계적으로는 도타2(DOTA2)라는 게임을 많이 하죠, 미국 쪽에서는 상당히 많이 하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새로 개발되는 게임들은 그래픽 사양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게임을 구동하는 컴퓨터가 데스크탑 보다는 랩탑을 많이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성능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조금 그래픽 사양이 높지 않은 그런 게임들을 (북한에서는) 많이 즐기고요, 혼자서 게임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도타(DOTA)라는 게임을 북한 젊은이들은 굉장히 즐깁니다. 그 외에 카운터스트라이크나 사격 게임, RTS (실시간 전략 게임) 장르의 게임을 많이 즐깁니다. (북한 젊은 세대의 특성상) 당연히 지금도 그런 게임이 유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문제는 북한 또한 ‘학생과 젊은층의 온라인 게임 과몰입’으로 골치 아파 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지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발간된 북한 소설의 한 대목을 들며 현재 북한 온라인 게임 실태를 꼬집었습니다.
[ 이지순]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북한은 자기네들의 어떤 삶의 현상에서 좀 많이 고쳐야 될 점을 직접적으로 막 대면해서 얘기하지는 않거든요. 우회해서 얘기하는 편인데 2022년 즈음에 나왔던 북한소설의 한 대목에 어떤 사람이 막 분게해서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학생들 아니면 젊은이들이 궤도 전차나 아니면 버스 안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손전화를 들고 게임에 몰두한다. 오락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통탄할 일이냐'라고 막 분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자면 실제로 일상적으로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좀 광범위하게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실제로 이 통일위원은 게임과 관련해 면담한 탈북민 중 “밤새 게임을 하느라 중요한 정치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서 비판서를 쓴 친구도 있었다”는 증언을 언급하며 북한 당국이 현재 학생과 젊은층의 게임 중독에 대한 고심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에 앞서 이미 6년 전인 2018년 10월에는 북한 노동신문에 ‘게임 중독이 정신 질병’이라며 과도한 게임에 대해 경고하는 기사가 게재된 바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는 ‘심각한 게임 중독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온종일 오락할 생각만 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오락을 하지 못하면 참기 어려워하고 있다’라면서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을 통해 강경하게 단속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나 음악 등에 비해 온라인 게임에 관한 단속과 처벌은 여전히 약한 편입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이 온라인 게임을 직접적인 외부 세계와 접속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과 게임을 단속하는데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북한 젊은이들의 온라인 게임 열풍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김용현] 온라인 (게임) 관련된 부분에서 외부 세계와 네트워크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북한 내부에서 이 부분은 좀 용인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입니다. 어쨌든 지금 온라인으로 여러 활동을 하는 청년들 혹은 어린 세대의 활동에 비해서 그거를 단속하는 장년 세대 혹은 성인 세대가 (기술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차원에서 온라인 (게임)에 대한 통제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온라인 (게임) 부분에 대해서 단속을 분명히 하고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을 단속할 수 있는 여건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아직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골머리는 앓고 있지만 대응책이 만만찮은 이런 상황이라고 봐야 되겠습니다.
에디터 조진우, 웹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