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해 말 미국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실험 유예 파기를 시사한 북한이 전술 차원의 도발을 넘어 고강도 전략 도발을 감행할 지 여부가 주목되는데요. 한국 내에선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사태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북한이 미국의 '레드라인' 이른바 금지선을 넘지 않으면서 그 임계점을 넘나드는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도발의 모호성'을 적극 활용해 미국의 강경 대응을 피하면서도 대통령선거 국면의 트럼프 행정부를 최대한 압박하려 할 것이란 분석인데요. 당 창건 75주년과 미 대선이 예정된 하반기가 유력한 도발 시기로 꼽힙니다.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발사 중지에 더 이상 얽매일 근거가 없다며 새 전략무기 공개를 예고한 북한.
지난 2018년 4월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ICBM·핵실험 유예' 파기 가능성을 시사한 겁니다.
ICBM·핵실험 재개는 사실상 미국의 레드라인, 이른바 금지선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실제 파기 여부는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한국 외교가에선 그러나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고강도 도발을 마음 놓고 실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사태는 김정은 정권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제약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 사태로 수세 국면에 놓인 북한으로선 당분간 고강도 전략 도발을 감행할 여력이 없다며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내부 단속과 정면돌파전 달성에 도움이 되는 국면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북 협상의 불확실성과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적 내핍이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 국면의 장기화로 인해 당분간 내부 안정과 상황 관리에 주력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북한이 선언한 정면돌파전 역시 대미 강경책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아닌 제재 장기화에 대비한 '버티기'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는 당분간 김정은 정권이 대내외 리스크, 위험을 높이지 않는 선에서 '관리'에 방점을 둔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무엇보다 레드라인을 넘는 고강도 도발의 경우 북한 체제의 취약성을 가중시킬 전망입니다. 미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해 추가 제재를 비롯한 한미 연합훈련 재개, 전략 자산 전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란 사태에서 보듯 경우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천식 전 한국 통일부 차관: 북한 역시 현 단계에서 미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감행함으로써 스스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장 초래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하는 대신 상당히 오랫동안 미국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군'인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제한도 제약요인입니다.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 위기를 겨우 봉합한 중국으로선 북한의 도발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기 어렵습니다. 미중 전략경쟁 국면 속에 감행된 북한의 고강도 도발은 미국의 대중 압박 강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미국의 역내 미사일 방어체제 강화로 이어져 중거리 핵전력(INF)협정 폐기 후 고려 중인 역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의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사활적 이해 침해로 여기는 사안입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ICBM 발사 등 과거의 도발 행위로 돌아갈 경우 중국은 미중관계와 북중관계 사이에서 이른바 '선택의 딜레마',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이 제재 이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동참할 경우 북중관계는 위기에 봉착하거나 다시 정상궤도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박영호 서울평화연구소장은 코로나 국면 이후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는 북한으로선 굳이 중국을 자극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수사적 차원에서 공세적인 대미 압박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문제는 도발을 통해 위기를 조성하고 그 속에서 생존의 '기회'를 포착해온 북한의 오래된 '벼랑 끝 전술'을 감안할 때 고강도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는 데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라는 돌발 변수에 따른 단순한 시기의 조정일뿐 핵·ICBM 도발이란 '과거로의 회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선 안된다는 지적입니다.
한민구 전 한국 국방부 장관: 만일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연이은 군사 도발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끌어 올림으로써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를 인정받고자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거리 미사일 및 방사포 사격 도발과 같은 무력시위를 비롯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또는 SLBM 탑재용 3000톤급 잠수함 실전 배치 등 고강도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대비한 한미동맹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중요합니다.
한국 내에선 이에 따라 북한이 미국의 레드라인을 명백하게 넘지 않으면서 그 임계점을 넘나드는 이른바 '도발의 모호성'을 적극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판 자체를 깰 수 있는 핵실험이나 ICBM발사를 통한 수직적 핵 고도화는 자제하는 대신, ICBM 엔진 시험이나 핵물질 생산 증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탑재용 잠수함 건조와 같은 수평적 핵 고도화에 공개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른바 전략 도발의 효과를 극대화하되 위험부담은 낮추는 방식입니다. 이로써 미국의 강경 대응을 피하면서도 대통령선거 국면의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인식하는 레드라인은 아니지만 북한의 핵능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조치로, 북한이 수평적 핵 고도화 전략을 공개적으로 시행할 경우 한미는 심각한 안보 딜레마,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이 같은 행보는 ICBM·핵실험 중단을 주요 업적으로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역이용한 대미 압박 전술이란 점에서 우려됩니다.
실제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도 ICBM·핵실험 재개를 막기 위한 조치란 분석입니다. 대규모 정찰 자산의 한반도 전개나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 미북 정상 간 친서 외교 모두 북한의 전략적 오판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겁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미국은 대선이 실시되는 올해 의미 있는 비핵화 협상이 어렵다고 보고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서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현실적인 대북 목표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유력한 도발 시기로는 당 창건 75주년과 미 대선이 예정된 하반기가 꼽힙니다.
우선 당 창건 75주년 계기 인공위성 발사나 새로운 ICBM의 열병식 등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공위성 발사의 경우 '평화적 목적의 우주발사체'라고 주장해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사격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관세 전 한국 통일부 차관(2/4 한국언론진흥재단 토론회): 북한은 오는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군사 퍼레이드에서 새로운 ICBM을 공개하거나 인공위성 발사 가능성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국내 정치 동향과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전략적으로 결정적 시점을 모색해 갈 것이다, 이를 통해 유리한 대미 협상의 여건을 마련해 나가는 궤도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거 북한의 도발 행태를 감안할 때 미 대선 직후 본격적으로 도발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북한은 과거 미 대선이나 대통령 취임 이후 약 1~6개월 사이에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해왔습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항상 도발을 해 왔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거리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트럼프 대통령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도발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겨냥한 직접 도발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 한국을 향한 '틈새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남 국지 도발로 국제사회에 한반도 이슈(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한미 대응능력을 시험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조태용 전 한국 외교부 차관(4.15 미래통합·한국당 안보연석회의): 중요한 것은 북한이 작년부터 발사하고 있는 미사일의 경우 한국만을 사정권에 둔 위협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북한은 현재 한미의 올해 국내 정치일정을 이용해 신형 무기의 위력을 높이면서 한미 방어망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한국 외교가는 결국 올 한 해 한반도 정세의 경우 북한의 전략 도발의 수위와 이에 대한 한미의 대응 여부가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말까지 전략 도발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 등 정세 추이를 지켜보며 전략 도발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시기와 방식을 저울질할 것으로 보입니다.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고강도 전략 도발에 나설 경우 미국은 추가 제재와 한미 연합훈련 재개 수순을 밟을 것이라며 이 경우 미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는 싱가포르 회담 이전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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