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부패 척결’ 지시, 전면 시행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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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음주 접대 등을 받은 지방 당 간부들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것일 뿐 실제로 대대적인 부패 척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7일 이른바 ‘음주 접대’ 등 지방 당 간부들의 비위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같은 달 29일 북한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남포시 온천군과 자강도 우시군의 당 간부들이 술 접대와 뇌물을 받는 등 ‘특대형범죄사건’을 일으켰다고 지적했습니다.

간부들이 감찰권한을 휘두르며 주민들로부터 이익을 편취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가 당 비서국 회의를 소집해 지방 당 간부들의 부패 행위를 공개적으로 질책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에선 중앙당이나 권력기관이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심각한 부패 행위를 일삼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지방에서 흔히 발생하는 음주 접대나 주민 수탈을 국가 차원의 중대한 정치문제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에선 김정은을 비롯해 권력기관들이 훨씬 규모가 큰 부패 행위와 부정 축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김정은이 부패를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부패'를 이용하려는 것이고...

오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가 역점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른바 ‘온천군·우시군 사건’을 정치 문제화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지방 당 간부들이 주민들로부터 과도한 뇌물을 받거나 갈취하면 ‘지방발전 20x10 정책’의 정치적 효과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 김정은, 간부들 '부패 행위'를 통치 수단 활용"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대대적인 ‘부패와의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간부들의 부패 행위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할 정도로 권한을 이용한 이익 추구가 나라 전체에 만연하다는 것입니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권력과 권한이 클수록 부패 규모도 커지며, 김 총비서부터 절대권력을 이용해 통치자금을 확보하고 개인 재산을 부정 축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라로부터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당 간부들은 뇌물을 받아 이를 충당하고 김 총비서는 이를 묵인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충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당 간부들이 부패하지 않게 하려면 경제를 발전시켜 돈을 벌어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데, 그런 근본적인 체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패 척결이란 것도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가 주장하는 부패 척결은 “실제 모습을 감추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며 “북한에선 독재자와 간부들이 모두 부패의 사슬에 얽혀 있고, 이들이 부정 축재를 하지 않고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올 순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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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화성지구 4단계 1만세대 착공식 참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6일 평양의 화성지구 4단계 1만세대 살림집(주택)건설 착공식이 성대하게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나경근/Y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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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비서가 앞으로도 ‘부패 척결’을 내세우겠지만 이는 주민들의 지지를 얻거나 정적 숙청, 권력기관 징벌, 당내 기강 확립 등을 목적으로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이 진지하게 당 간부들의 부패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적·행정적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민주적 통치 수준을 높이고 경제 성장을 통해 간부들이 부패를 중단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등 근본적인 조치를 취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 총비서의 부패 척결 지시에 이어 관영매체를 통해 당 규율 준수를 강조하는 등 기강 확립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앞서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당 비서국 확대회의 이후 북한 지방 당 간부들이 당국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식당들은 간부를 위한 ‘개별 식사실’을 없애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