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은 동면 중’ 중학교 낙서에 북 ‘발칵’

0:00 / 0:00

앵커: 겨울철 땔감 과제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양강도 학생들이 등교를 기피하는 가운데 교육 현실을 비난하는 낙서까지 발견돼 양강도 사법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김지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양강도 삼수군 포성노동자구는 과거 김정은 총비서와 노동당을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돼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른 곳입니다. 최근 이곳 포성리에서 또다시 북한의 교육 현실을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됐다고 복수의 현지 소식통들이 전했습니다.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8일 “삼수군 포성중학교의 나무 창고에서 지난 15일, 낙서가 발견돼 도 보위부와 안전부(경찰)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범인을 잡기 위해 도 보위부와 안전부는 포성분주소(파출소)에 수사본부까지 설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낙서는 ‘학교는 문을 닫았다. 공화국은 지금 동면 중!’이라는 내용으로 “석회로 하얗게 회칠한 학교 나무 창고 외벽에 검은색 마지크(매직)로 쓰여졌으며 이를 반혁명 분자의 소행으로 간주한 포성분주소가 도 안전부와 삼수군 안전부에 즉각 보고해 긴급 수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겨울철 난방용 화목을 보관하는 이 창고는 지금은 땔감이 없어서 비어있는 상태”라며 “포성노동자구는 학생 인원이 적어 소학교(초등)와 초급(중등), 고급(고등)중학교로 나누지 않고 그냥 포성중학교라는 이름으로 통칭하여 운영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낙서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은 포성 농장 3작업반의 세포비서와 농민 3명이었다”며 “이들은 이날 아침 일찍이 소를 끌고 땔감을 하러 가던 중 학교 나무 창고 외벽에 써있는 낙서를 발견하고 분주소에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수사본부에 따르면 14일 저녁, 나무 창고 주변에서 국경경비대로 보이는 인물 2명이 서성이고 있었다는 주민 신고가 있었다”며 “일부 주민들은 ‘당과 수령을 직접 헐뜯은 것도 아닌데 낙서 내용에 대해 너무 민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관련 기사>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망한다” 혜산 공개총살 직후 낙서 발견Opens in new window ]

북,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게시물 훼손에 경비 강화Opens in new window ]

같은 날 양강도 교육부문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삼수군 포성중학교에서 발견되었다는 낙서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며 “김정은 집권 이후 포성노동자구에서 일어난 낙서 사건은 이번까지 네 번째인데 살벌한 수사에도 모두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사법기관들은 이번 낙서 사건을 반동분자의 소행으로 몰고 가는데 교육부문 일꾼들은 학생들의 장난으로 보고 있다”며 “반동분자의 악의적인 소행이라면 당과 수령을 직접 비난했겠는데 낙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9c98f95e-ce79-4eae-a2d7-7ad1fb682c56.jpeg
평안북도 향산군의 한 노인이 거리에서 땔감 나무를 모으고 있다. /ap

“일각에서는 이번 낙서 사건을 철없는 학생들의 장난으로 단정 짓고 ‘어린 학생들이 오죽했으면 그런 낙서를 했겠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양강도의 학교들은 현재 운영하는 흉내만 내고 있을 뿐, 실제적으로는 운영이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올해 겨울, 학생 1인당 할당된 화목(땔감)과제는 1.5입방인데 장마당에서 사려면 중국 인민폐로 300위안(41.4달러)으로 노동자 한 명이 8개월간 모아도 모자라는 돈”이라며 “땔감을 마련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올해 부과된 과제는 땔감 뿐이 아닙니다. 연말을 앞두고 인민군대 지원물자로 토끼가죽이나 개가죽, 된장과 김치 또 건설자들에게 보낼 로동보호장갑, 꼬마 기금 3만원(1.25달러/ 12월 환율 1$: 내화 2만4천원)을 바쳐야 합니다.

소식통은 “이런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아예 등교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어 현재 양강도 학교의 평균 출석률은 30%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단순히 학교만 운영을 멈춘 것이 아니라 식량을 공급하는 철도, 병원을 제외한 모든 기관들이 운영을 멈춘 상태”라며 “사람들이 국가를 가리켜 ‘동면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지은입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