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리아 북 외교관 “시리아, 대북관계 정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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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리아에서 근무한 바 있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시리아 국민들에 대한 인권유린을 일삼았던 시리아 독재 정권을 적극 지원했던 것이 북한이라며 현 시리아 과도 정부에 대북관계를 정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년여 동안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바 있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시리아가 정상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북한과 시리아의 관계는 1966년 수교 이후 북한이 1967년 벌어진 ‘6일전쟁’과 1973년 벌어진 ‘10월전쟁’ 등에 군사적 지원을 하면서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류 전 대사대리에 따르면 시리아 다마스쿠스 교외 묘소에는 북한군 조종사 3명의 묘소가 마련돼 있는데, 이는 그만큼 가까운 양국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류 전 대사대리는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난해 12월 무너진 시리아 독재정권, 알아사드 정권이 자행한 인권유린의 책임에 북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화학무기 지원 사례를 꼽으며 현 시리아 과도 정부에 북한과의 외교 단절을 촉구했습니다. 지난 2013년 8월 시리아 독재 정권은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지역에 사린가스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화학무기 사용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 국제 규범에 의해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류 전 대사대리는 “2009년 10월과 11월 북한에서 시리아 라타키아로 향하던 북한 선박에서 1만 4,000여 벌의 화생방 방호복이, 같은 해 11월에는 북한에서 시리아로 향하던 라이베리아 선박에서 화학무기 생산용 시약이 발견됐다”며 과거 북한과 시리아 간의 화학무기 거래를 지적했습니다.

“시리아 과도정부, 바샤르 알아사드·북 정권 ICC 제소해야”

이어 류 전 대사대리는 “현 시리아 연합 정부가 자국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 정권을 바샤르 알아사드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시리아 과도 정부에 향후 발전과 번영을 위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발전과 번영을 이룩한 국가들과 수교를 맺을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시리아 과도정부는 알아사드 정권과 결탁해 시리아 국민 학살에 일조한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해야 합니다. 시리아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자면 경제성장의 성공 신화를 창조한 한국과 같은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한국 정부도 지난 11일 바샤르 알아사드를 몰아낸 현 시리아 과도정부와 수교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시리아는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유일한 미수교국입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리아 과도정부는 이달 초 한국 대표단과 만나 수교와 관련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대표단이 시리아를 방문한 것은 지난 2003년이래 22년만입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형제국’으로 불리던 쿠바와도 수교를 맺은 바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목용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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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리대사 /RFA PHOTO

다음은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기고문 전문

북한 정권이 시리아 국민에게 끼친 해악

2024년 12월 8일 기나긴 시리아 내전이 종식됐습니다. 2011년 3월 남부의 소도시 다르아에서 어린 학생들의 낙서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13년 만에 일단락됐습니다. 8일 새벽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했고 바샤르 알아사드는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황급히 모스크바로 도주했습니다. 억눌렸던 시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아사드의 초상화를 발로 밟고 “시리아 만세!”를 외쳤고 온 나라가 기쁨과 환희의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54년간 이어온 아사드가문의 세습 독재 체제가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자축하는 동시에 그동안 아사드 정권의 탄압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도 이어졌습니다. 13년 동안 지속된 시리아 내전으로 60만 명의 사망자와 1,50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반군은 고문과 집단 처형으로 악명 높은 ‘세드나야’ 감옥 문을 부수고 수감자들을 석방했습니다. 온몸에 고문 흔적이 역력한 죄수들은 자기 몸을 가늠하지 못해 반군 군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쇠창살을 빠져나왔습니다. 42년간 감옥에 있다가 햇빛을 본 수감자가 눈이 부셔 손으로 해를 가리는 장면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3세 남짓한 어린이가 감옥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시리아인이 아닌 요르단 국적임에도 감옥에 끌려와 38년 동안 수감돼 본국에선 실종자로 간주된 사람이 풀려나는 등 별의별 장기수들이 발견됐습니다.

고문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백치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수감자들도 있다는 증언들도 나왔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지상구역’의 이야기입니다. ‘세드나야’ 감옥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지하 3층 규모의 감옥 시설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형 밧줄 더미나 수감자들의 옷, 신발 무더기가 쌓인 방은 물론 용도 불명의 유압프레스기가 발견되었고 처형한 수감자 시신을 산성 용액으로 처리한 흔적과 시간이 다급하여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시신 더미가 쌓여 있는 영안실도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들이 감옥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과 처형을 당해야만 했던 이유는 단 하나, 독재자와 생각이 다르다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고문을 당해 온몸이 멍으로 만신창이 된 그들의 모습에 기가 막혔는데, 이것은 좀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목숨이 붙어라도 있지만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학살되어 암매장당했다고 합니다.

국제실종자위원회(ICMP)는 시리아 내전 기간 불법 구금과 납치 등으로 총 15만 7,000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알아사드 정권의 비밀경찰이 실종자들을 고문·살해한 뒤 암매장했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집단 매장지가 여러 곳에서 발굴되고 있습니다. 스티븐 랩 전 미국 전쟁범죄 대사는 지난해 12월 17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쿠타이파와 나즈하의 집단 매장지를 돌아본 뒤 “나치 이후 이 같은 끔찍한 학살 사례는 처음”이라며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알아사드는 자국민에게 염소·사린가스 등 화학무기까지 살포해 수만 명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 죽게 만든 ‘흡혈귀’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인간 백정’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국가가 바로 북한입니다. 시리아와 북한은 1966년 수교한 이후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1967년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 때 북한 공군 조종사 30명이 시리아 공군 조종사들을 훈련 시켰고, 소련제 미그-21기를 몰고 직접 공습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1973년 10월전쟁(제4차 중동전쟁) 때에도 시리아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다마스쿠스 교외에 있는 ‘나즈하열사묘’에는 3명의 북한군 조종사들의 묘소가 있습니다. 시리아-북한 관계는 1974년 9월 말 하페즈 알아사드의 평양 방문을 통해 고조됐습니다. 하페즈와 김일성은 정상회담을 갖고 군사 분야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하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김일성은 1945년부터 1994년 7월 사망할 때까지 장기 집권하면서 권력을 독점하는 등 개인숭배 체제를 구축했던 북한의 악명높은 독재자입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공군 조종사들을 비롯해 탱크부대와 특수부대 장교 등 군사고문단을 시리아에 파견했습니다. 북한은 또 탱크와 소총, 대포, 다연장포 등 재래식 무기들을 대거 시리아에 수출해왔습니다. 1990년대 북한은 시리아에 미사일 조립 시설 2곳을 지어줬는데 시리아는 매년 이곳에서 스커드 미사일 30∼50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2009년 10월과 11월 북한에서 시리아 라타키아로 향하던 북한 선박에서 1만 4,000여 벌의 화생방 방호복이, 같은 해 11월에는 북한에서 시리아로 향하던 라이베리아 선박의 컨테이너에서 화학무기 생산용 시약이 발견, 회수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알아사드 정권은 화학무기를 실전에 사용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3년 8월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장악 지역에 사린가스 공격을 감행해 주민 1,429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습니다. 브루스 벡톨 텍사스 앤젤로 주립대 교수는 “북한은 시리아의 화학무기와 관련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원했다”면서 “북한은 화학무기와 관련 부품 판매는 물론 시설을 건설해주고 군사고문관들을 파견해 필요한 기술과 훈련을 지원을 하는 등 ‘애프터 서비스’까지 제공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북한은 시리아 국민을 학살한 공범이라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시리아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정의를 짓밟은 김 씨 일가는 알아사드 일가와 똑같은 시리아 국민의 원수입니다. 알아사드 가문의 붕괴는 북한 김 씨 일가에게 ‘독재는 영원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모든 독재정권은 결국 종식된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수크,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 등 독재자들이 반 정부 세력에 의한 비참한 종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하는 것은 모든 나라 정부가 지켜야 하는 법적, 도덕적 책무입니다.

나는 현 시리아 연합 정부가 자국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 정권을 바샤르 알아사드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국민에게 바샤르 알아사드의 죄악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그래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시리아 과도 정부는 알아사드 정권과 결탁해 시리아 국민 학살에 일조한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해야 합니다. 시리아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자면 경제성장의 성공 신화를 창조한 한국과 같은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 이 기고문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