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의 전문가는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에 있어 정치적 합의 형식보다 조약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6일 발표한 ‘비핵화 합의와 이행의 법‧제도적 문제’ 보고서.
보고서는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과정에 있어 특별히 고려해야 할 법ㆍ제도적 문제들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비핵화 합의의 법적 성격 문제입니다.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와 이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핵심 합의서의 법적 구속력 여부에 대해 인식차가 있었고 이것이 합의의 이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며 북한 비핵화 합의 시 합의서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보고서는 합의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조약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조약이 갖는 공식적인 법적 지위가 평판 손상 등 위반에 대한 비용을 높이고 합의 당사자들이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북한 비핵화 관련 합의가 정치적 합의 형식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합의 이후 즉각적인 이행이 가능한 조치를 포함시키는 방안, 국제기구를 관여시키는 방안 등을 통해 합의로부터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이란 핵합의에 대해 의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정기적으로 의회에 보고하도록 한 2015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 검토법’이 비구속적 성격의 합의에 대해 의회의 관여 방식을 규정했다는 점에서 북한 비핵화 합의에도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보고서는 이어 상대국이 합의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복원하는 이른바 스냅백(Snap-back) 방식이 불신이 큰 당사자들 간 합의 도출을 용이하게 하고 이행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평가했고 비핵화 협상에 있어서 이를 대체할 다른 수단을 찾기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스냅백 발동 문턱을 너무 낮게 설정하면 핵합의가 쉽게 파기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반대로 문턱을 너무 높게 설정하면 위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며 최적의 조합을 도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제재 복원을 시작하는 주체가 다수의 국가이거나 UN 관련 기관 혹은 국제기구로 설정한 경우 단일 국가에 의해 제재 복원이 이뤄지는 경우보다 자의성의 위험이 더 적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협력적 위협감소 프로그램, 이른바 CTR(Cooperative threat reduction)의 적용이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CTR은 옛 소련 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의 핵무기, 핵시설 등을 폐기하기 위해 핵 포기를 대가로 기술과 자금을 지원한 포괄적 프로그램이며 넌-루가 법이라고도 불립니다.
보고서는 CTR이 대화를 촉진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진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중요한 보완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경우 예전 우크라이나 적용 사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재정적ㆍ기술적 지원이 요구될 것이라며 미국뿐 아니라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적인 접근이 보다 적절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 보고서는 한국전쟁 종식 등을 규정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우선적인 대북 안전보장 방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만약 평화협정 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대안으로 불가침 조항이 포함된 안전보장협정의 체결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미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간접적인 대북 안전보장 방안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전면적 제재 해제를 통한 정치적ㆍ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미국 의회는 인권 문제, 테러지원 문제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는 길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날 보고서의 연구책임자는 도경옥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며 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안준형 국방대 부교수, 이동은 유민국제법연구소 연구위원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했습니다.
기자 한도형,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