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비핵화 대신 상호안전보장 지향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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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비핵화를 지향하는 대신 남북이 서로에 대한 위협을 줄여 나가는 상호안전보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14일 열린 ‘제주포럼’에서 ‘미중 전략경쟁과 한반도 협력적 비핵화 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

한국의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의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이 자리에서 북핵 문제 해결 등 한반도 평화에 접근하는 관점을 기존의 비핵화에서 남북 간 ‘상호안전보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홍 실장은 북한이 지난 8일 공세적인 핵무력 법령 채택을 공개한 것을 언급하며 한미가 고수하고 있는 원칙과는 달리 현실은 비핵화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지는 않되, 지금까지와는 다른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쓸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비핵화 원칙을 유지하고 이를 문턱으로 삼겠다는 것이 지금 한국과 미국의 입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비핵화 협상에서도 멀어지고 있고 가능성도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표를 비핵화로 두되, 입구와 중간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홍 실장은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 발표가 다음 달 열릴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를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 가운데 중국이 당대회에서 미국을 향한 좀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을 기대하고, 이에 동조하는 메시지를 먼저 발표함으로써 우방인 중국·러시아와 대미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 발표 배경에는 기술적·정치적 여건상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핵실험을 선언으로 일단 대신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핵 전략은 두 가지 요소, 즉 물리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핵 전력’과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이른바 ‘핵 교리’로 이뤄지는데, 이번 법령 발표는 실현 가능성과는 관계없이 언어적·법적 행위로써 ‘언제든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설명입니다.

홍 실장은 또 북한이 기존에 요구해 온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 최소한의 조건도 무시한 채 핵무기 포기 불가를 선언한 것은 기존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한미 측의 대북 정책을 무력화하고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핵 포기는 안 되지만 아주 제한적인 차원에서 핵군축이나 군비 통제 등의 접근은 수용할 수 있다는 정도로 대북 접근법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이번 발표가 호전적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방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습니다.

홍 실장은 북한이 제시한 핵무기 사용 조건과 관련해 “자신들이 어떻게 미국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는지, 두려워하는 상황을 명기하고 있다”며 공세성 뿐 아니라 상당히 방어적인 성격을 함께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같은 토론회에서 북한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은 ‘응징 억제’보다는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커 보인다며, 한미 측에 대한 재래식 전력 열세를 극복하려는 수단일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변화는 결국 역내 불안정성과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황 교수는 다만 북한의 노선 변경이 대규모 지상군 등 기존 재래식 전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데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며, 지상 전력에 초점을 맞춘 남북 간 군비통제로 시작해 비핵화로 이어 나가는 일정표를 짜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