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풍계리 탈북자들 ② 방사능 식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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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이제껏 6번의 핵실험을 강행하고 7번째 핵실험을 준비 중인 곳입니다. 핵실험장에 인근 지역 주민들은 언제부턴가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한국 통일부는 지난 2017년, 2018년에 이어 올해 5월부터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 거주했던 탈북민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 전수조사에 나섰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핵실험장 인근 출신으로 이번 피폭 조사에 참여한 탈북민들로부터 고통스러운 과거를 직접 들어 봤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길주군에 거주했던 탈북민 김화영(신변 보호위해 가명 요청)씨의 사연을 전합니다. 김 씨는 길주군에서 자신이 음용했던 식수원을 방사선 피폭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보도에 진민재 기잡니다.

[김화영(가명), 탈북민] 두통이 모두 너무 심하니까. 여기 같이 온, 지금 길주 사람들 거의 다 두통 가지고 있거든요. 근데 그게 별 약 다 써도 낫지 않고 병원 가도 진단이 없고, 한국서 (CT) 촬영해도 하나도 이상이 없으니까. 북한 있을 때도 그래서 그걸 귀신병, 귀신병 했거든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난 다음 해인 2014년 탈북한 김화영씨.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두통의 원인을 찾아 병원을 두루 다녀 봤지만, 도무지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한국서 처음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 ‘백혈구 수치가 낮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 씨뿐만 아니라 당시 길주군에서 함께 살다가 탈북한 이들 중 여럿이 같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김화영(가명)]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검진할 때 저는 그때부터 C형 간염이랑 백혈구 수치가 낮다고 했거든요. 그때 처음에 우리 길주 사람이 백혈구 수치 낮은 사람 여러 명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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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원자력의학원이 탈북민 10명에 대해 안정형 염색체이상분석 검사를 실시한 결과, 5명이 선량 중앙값이 최소 검출 한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보고서 일부

이러한 두통, 백혈구 수치 감소 증상 외에도 다양한 희소 질병에 시달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북한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언제부터인가 흔한 일이 됐다고 합니다.

[김화영(가명)] 백혈구 감소증에 걸려서 사망한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들도 몇 있었어요. 글쎄요 암 환자가 특수하게 길주군에는 많았어요, 결핵 환자하고 암 환자가. 우리 옆집도 백혈구 (감소증으로) 잇몸에서 피가 나면서 애가 죽었거든요. 4살 이런 애가 피부에 꼬집어서 멍든 것처럼 온몸에 그렇게 됐다가 후에 진단받은 게 모세혈관 파열인가, 하여튼 그런 병에 걸려서 애가 사망했어요. 잇몸에 피가 멈추지 않았고 별 약 다 써 봐도 안 돼서….

문제는 정작 핵실험장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병의 원인 중 하나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이 지목되고 있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다는 점입니다. 김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김화영(가명)] 그때는 모두 고난의 행군이 시작돼서 사람들이 잘 먹지 못해서 그렇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죠, 거기(북한)서 살 때는. 그때 아프고 그래도 핵실험 때문에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우리는 그랬어요. 심각한 문제잖아요, 심각한 문제. 그 위험을 모두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인식 못 하고 있었거든요.

김 씨가 자신이 방사선 피폭 피해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 건 2017년과 2018년 한국 통일부가 실시한 탈북민 방사선 피폭 전수검사를 받게 되면서입니다.

김 씨는 올해 5월에 세 번째 피폭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 씨와 함께 방사선 피폭 검사를 받은 풍계리 주민 중에는 체내 방사성 물질 검출 수치가 최소 검출 한계인 250밀리그레이를 한참 넘어 치사량에 해당하는 1천 386밀리그레이가 검출되기도 했습니다. 방사선 피폭 흔적을 김 씨 눈으로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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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서 장흥천과 남대천으로 이어지는 수계.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보고서 일부

김 씨는 과거 길주군 주민으로서 평생 먹고 살았던 식수를 특정해 지목했습니다.

[김화영(가명)] 풍계리 쪽에서 장흥천 물이 남대천에 흘러 들어오거든요, 풍계리에서 남대천에서 합해서 내려오다가 풍계리의 역전 이름이 재덕역이거든요. 재덕역 아래, 성후역, 남석역이고 그 역 옆에 길주군 수원지가 있거든요 남석에. 목성리 남석이라는 데 길주군 수원지가 있거든요. 풍계리서 내려오는 그 물을 수원지에 잡아 뒀다가 관통해서 길주군 음료수로 다 내려가는 거예요. 수돗물이 다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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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로 이 일대 위성 사진을 확인한 결과 실제로 남석역 옆의 저수지와, 저수지 내에 취수탑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보였다. /구글어스

이 일대 위성사진을 확인한 결과 실제로 남석역 옆에 위치한 남석 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 남측에는 취수탑으로 추정되는 시설도 눈에 띕니다. 길주군 인근 주민들이 마시는 식수, 수돗물의 발원지가 곧 풍계리 핵실험장일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통일부는 지난 2017년, 2018년 북한 핵실험에 따른 피폭이 우려되는 탈북민들의 방사선 피폭 전수검사를 할 당시 이들의 북한 거주 당시 식수원 이용 실태도 함께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조사 대상자 40명 중 일반인 피폭량의 수백 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체내에서 검출된 이상 소견자가 9명 확인됐는데, 이 중 미응답자 1명을 제외한 8명 전원이 김 씨처럼 지하수 또는 수돗물을 음용했다고 답한 겁니다.

핵 분야 전문가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 출신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 연구원은 핵실험 이후 만탑산 주변으로 잦은 지진이 일어난 게 균열의 증거라고 지적하며 식수원 오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 연구원] 균열이 생겼다면 비나 물, 눈 녹은 물이 균열 사이로 들어가 인근 하천, 지하수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면 강 하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결국 이 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마시면서 방사능 일부를 섭취하는 셈이 됩니다.

한국 지질학 분야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역시 만탑산의 화강암 특성상 지질학적으로 방사성 물질 유출이나 지하수 오염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만탑산이 사실은 수직절리가 많기 때문에 원래 많이 깨져 있는 데다가 (핵) 폭발 실험을 하니까 그게 방사능이 더 많이 공기로 나가기도 하고 노출되기도 하고 지하수도 많이 오염이 되고, (지하수가) 오염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막을 수가 없어요.

북한에서 김 씨와 같은 지역인 길주군에 살았던 다른 탈북 주민들 또한 풍계리에서 내려온 물이 합쳐지는 남대천의 수질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됐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미영(가명)] 야~ 거기야 물이 맑고 좋았죠. 그 남대천 물에서 산천어도 좋고, 산천어를 김일성한테 올리는 8호 제품으로 올려보내고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아예 산천어도 없고, 송이도 그쪽 편에서 아예 나오는 것도 없고. 혹시 나오는 것 있으면 핵실험장 거기 것은 가족들이나 뽑아서 장마당에 내다가 넘겨주면 그게 오염된 거 먹고살고 그러죠 뭐.

핵실험장이 위치한 풍계리(豊溪里)는 한자로 풍요로운 땅에 맑은 계곡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제 북한의 핵실험장이 있는 곳으로 통합니다. 그리고 이 일대 주민들은 오늘도 자신이 겪고 있는 희소병의 원인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단순히 귀신병으로 치부하며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고 있습니다.

[김화영(가명)] 거기(길주군) 가서 10년을 군 복무하고 온 남자가 나이 마흔 살 넘을 때까지 머리가 몇 올 안 남고 온몸이 약하고, 결국 장가도 못 갔어요.

한편 한국 통일부는 지난 5월 10일부터 5년 만에 또 다시 풍계리 및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89명을 대상으로 방사능 피폭 전수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이에 대해 자유아시아 방송(RFA)이 최근 통일부에 문의한 결과, 6월 28일 기준으로 모두 23명이 검사를 완료했고 나머지 66명의 검사가 완료되는 대로 검사 결과 전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한꺼번에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답해 왔습니다.

또한 이번 검사에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탈북민에 대해서는 추후 정기적인 모니터링 등 건강상 필요한 후속 조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는 계획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5년 전 약속과 동일한 계획에 불과해,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통일부가 나서 줄 지 귀추가 더욱 주목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민잽니다.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이제껏 6번의 핵실험을 강행하고 7번째 핵실험을 준비 중인 곳입니다. 핵실험장에 인근 지역 주민들은 언제부턴가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한국 통일부는 지난 2017년, 2018년에 이어 올해 5월부터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 거주했던 탈북민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 전수조사에 나섰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핵실험장 인근 출신으로 이번 피폭 조사에 참여한 탈북민들로부터 고통스러운 과거를 직접 들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