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이 체결된 가운데, 한국 정부가 핵 기술을 포함한 높은 수준의 군사기술의 북한 이전은 넘지 말아야할 '레드라인'이라는 점을 러시아 측에 강조해야 한다는 한국 전문가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0일 북러 정상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조약에는 북러 중 한쪽이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습니다.
한국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성락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주최한 ‘표류하는 한러관계, 무엇을 해야 하나’ 토론회 발표에 나선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해 ‘레드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엄 교수는 “만약 러시아가 핵 기술을 포함, 높은 수준의 군사기술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한국으로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엄 교수는 “레드라인은 미국과의 공조 속에서 경고 메시지를 단계별로 거치는 과정 속에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고 밝혔고 “한국 정부로서는 러시아가 제시한 레드라인, 즉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무기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키는 게 적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북러 관계가 만약에 핵 기술을 포함한 고위 군사기술 제공 단계로 간다면 우리도 대러 관계 유지가 어렵다는 '레드라인' 설정이 필요해 보이고요. 미국과의 공조 속에서 정보 공유를 통해서 경고 메시지의 단계를 몇 단계 거치는 과정에서 레드라인 설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엄 교수는 이와 함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엔 대북제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히며 대북제재를 무력화할 위험, 향후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위험이 생겼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엄 교수는 “러시아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소통을 재개하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토론회 또 다른 발표자인 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도 “북한이 러시아를 활용해 핵 국가 지위를 획득하려는 시점”이라며 “한국이 어떻게 러시아와 관계를 관리하며 이를 막을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신 소장은 “한국 정부는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로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구축하는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바 있습니다. 신범식 소장의 말입니다.
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현재 북한이 러시아를 이용해서 핵 국가 지위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전략들을 단계적으로 지금 추구해가고 있다는 점을 돌아볼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러시아의 관계를 새로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기회로 지금 이 시간을 써야 합니다.
한편 한국 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도 이날 서울 중구에서 통일정책포럼을 열고 북러 조약 체결 의미와 한국의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발표에 나선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약 내용 등을 보면 조소 우호조약 수준으로 격상돼 사실상 군사적 측면에서는 준 군사동맹 내지 군사동맹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홍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에 대항해 홀로 전력 증강을 해왔지만, 이제는 하나의 ‘우산’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다만 “북러 조약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달리, 다른 조약국에 대한 공격이 곧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는 직접적 개념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틀을 약간 벤치마킹하거나 그것에 대한 억제력을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나름대로 굉장히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딱 하나 다른 게 무엇이 있냐하면, 북한과 러시아가 맺은 조약에는 '북한을 공격하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는 직접적인 개념은 사실상 없습니다.
토론에 나선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조약의 수위가 예상보다 높지만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북러가 체결한 조약 4조에는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라는 조건이 들어있는데, 이 조건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 석좌연구위원은 현재 제공되는 북한의 지원은 계속해서 받으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은 회피할 수 있는, 러시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조건이 없어요.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 법과 러시아 연방법에 준하여'라는 조건이 들어있어요. 여기에 어긋나면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 조항은 절대적으로 러시아에게 유리하죠.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