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 정의용 주장에 “대북제재 완화, 대화 유인책 아냐”

0:00 / 0:00

앵커: 한국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거듭 대북제재 완화를 거론하며 미국이 대면 협상에서 북한에 제공할 좀 더 구체적인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제재는 북한의 잇따른 불법적인 핵·미사일 도발로 초래됐기 때문에, 북한의 아무런 비핵화 조치가 없는 한 제재 완화는 유인책이 될 수 없고, 등가성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경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 정의용 장관이 "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인센티브, 즉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현 상황을 방치하면 북한의 미사일 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미 고위 당국자는 이 신문에 "북한에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북한의 반응이 부족했기 때문에 협상이 교착됐다"며 "우리(미국)는 북한과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외교를 추구하며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정 장관의 발언을 반박했습니다.

이후 정의용 장관은 1일 한국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신문 인터뷰 기사를 둘러싼 논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대북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달 22일 방미 당시 미 외교협회(CFR) 간담회에 나와서도 "북한에 인센티브(유인책)를 제공하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제재 완화나 해제를 검토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거듭된 주장과 관련해,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불법적인 행동으로 초래된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는 유인책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균열시키는 조치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 한국 외교부 장관이 제재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김정은의 협박 외교가 효과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재 완화는 한미동맹이 원하거나 의도한 효과를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히 그는 북핵 협상 경색의 책임을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이 아니라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미국에 돌리는 것으로도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의 대북제재 완화는 북한에 더 이로운 조치이고 등가성에서 벗어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제재완화는 협상과 대화를 위한 유인책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결과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수 김(Soo Kim)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정의용 장관의 제재완화 발언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김 정책분석관은 북한의 의도와 위협 가능성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는 것은 한국의 안보와 한미동맹의 이익에도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제재완화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할 것이며, 김정은 총비서가 더 많은 무기와 불법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미국 워싱턴의 민간연구기관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Troy Stangarone) 선임국장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지금은 제재를 완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현재 어떠한 긍정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에 비춰 볼때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그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입장도 한국의 제재완화 제안을 지지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그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대북제재 완화는 정치적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아틀란틱 카운슬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문재인 행정부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완화를 통해 남북경제 협력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지만, 대북제재 완화는 미국 의회 등 정치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미국 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Harry Kazianis) 한국 담당 국장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상응하는 양보를 한다면 제재완화도 필요하다면서, 단계별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현재 한국 정부가, 북한이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댓가로 북한산 석탄 금수조치 해제 등 제재완화를 통해 협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자 이경하,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