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ICBM 발사 유예를 파기한 북한이 지난 2018년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데 합의한 9·19 남북 군사합의.
지상과 해상, 공중에 각각 완충구역을 설정해 적대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내에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이어 의도적으로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최용환 책임연구위원과 이기동 수석연구위원은 30일 ‘북한 신형 ICBM 발사의 쟁점과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한 2021년 3월 김여정 담화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며 이같이 전망했습니다.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내놓은 대남 비난 담화에서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남북 군사합의 합의서도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 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연구진은 “2020년 6월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가 단초가 되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이어진 전례를 고려할 때, 향후 전단 살포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9·19 남북 군사합의는 사문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ICBM 발사 시점과 관련해선, 먼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러 관계가 크게 악화된 시점을 택해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조력을 획득할 기회를 노린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이른바 ‘신냉전화’ 구도를 활용해 무기를 개발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으려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앞서 밝힌 미국과의 장기전, ‘정면돌파전’을 위해 지난 2017년 핵무력 완성 선언 당시 공언한 ‘전략국가’ 단계에 진입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이번 시험발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꼽혔습니다.
연구진은 오는 4월 김일성 생일 110주년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추대 10주년,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등 북한이 이른바 ‘사회주의강국건설’을 과시해야 할 정치 행사들이 이어지고 전반기 한미 연합훈련 실시가 예정된 것도 시험발사 이유로 들었습니다.
또 북한의 잇단 무기체계 시험발사가 지난해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의 이행이라며, 향후 ICBM 정상 각도 발사를 통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 다탄두 ICBM 개발, 추가적인 핵실험 등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지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핵과 탄도미사일 외에도 극초음속미사일과 장거리순항미사일, 군사정찰위성 등 다양한 신무기 개발에 나선 것은 세계적인 군비경쟁 시기를 이용해 규제가 강화되기 전 새로운 첨단무기 전력을 갖추려는 시도라는 분석입니다.
연구진은 한국 정부가 이 같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한미 연합 방위태세를 강화하고 원점 타격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인식처럼 동아시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적 갈등 구조가 강화되면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며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점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북한의 ICBM 발사가 대외적인 과시보다는 대내 결속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날 외신을 대상으로 한 기자설명회에서 북한이 경제에 집중하기 위해 안보적인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ICBM 등 국방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이 보이는 일련의 국방력 강화는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내적인 필요성이 크고, 북한 스스로 생각하는 안보적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억지력 확보 수단으로써의 측면이 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북한 당국으로선 주민들이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외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해줄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최근 이어진 군사 활동은 결국 안보와 경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국가 목표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