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종전선언'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종전선언을 남북 간 신뢰구축의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의견과 북한의 비핵화 전까지는 종전선언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서울의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은 종전을 논의하고 있고 이를 축복한다”고 언급하면서 종전선언 문제가 급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종전선언이란 전쟁을 종료 시켜 상호 적대 관계를 해소시키려는 교전 당사국 간의 의사 표명입니다. 평화협정 같이 구체적인 평화 구축 방안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입니다. 6.25 정전협정 당사국인 남·북·미·중 간의 공식 합의가 있어야 의미있는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합의된 정전협정은 김일성 당시 북한 최고사령관과 팽덕회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유엔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마크 클라크 미 육군 대장 사이에서 이뤄졌습니다. 한국은 당시 협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 전쟁, 즉 6.25 전쟁의 당사국입니다. 이에 따라 6.25 종전선언의 당사국을 남·북·미·중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종전선언은 최소한 남·북·미 3자 합의가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도 이 같은 언급이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난해 7월):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앞서 지난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10.4 남북정상선언’ 제4조에도 “관련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10.4 남북정상선언에서의 3자는 남·북·미, 4자는 남·북·미·중을 의미합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꾸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종전’이라는 표현이 사용될지는 모르겠다”며 “다만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합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이 선언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정상회담 합의문에) '종전'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종전선언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의미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 되려면 남·북·미가 함께 하는 정도는 돼야 합니다. 국제법적 효력은 없겠지만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의미는 있습니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이어 “남북 정상 간 합의문에 ‘종전’은 ‘한반도 긴장완화’ 혹은 ‘상호불가침’ 등의 표현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종전선언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의미하는 ‘CVID’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종전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 논의에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 갈등의 원인인 북핵의 폐기와 관련해 어떠한 구체적인 내용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선언은 수없이 많은 신뢰 구축 과정을 기반으로 전쟁 요소 등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점검한 다음에 하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는 갈등, 전쟁 원인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유엔군사령부 해체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할 명분을 갖게 된다”며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벌어지면 유엔사 차원의 즉각적인 개입이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종전선언을 남북 간 신뢰구축의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박정원 국민대 법과대학장은 “엄격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 바로 이어지는 종전선언은 이뤄지기 어렵다”며 “남북 간 신뢰구축 차원에서 ‘선언’이라는 형태로 전쟁 종료를 천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할 경우 종전선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종전선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