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이룬 비핵화 합의에 대해 '진전된 합의'라는 평가와 북한의 진정성을 좀 더 의심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옵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이번 합의는 진전된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북한이 지금까지 본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사회문화 방면의 남북교류는 더 활성화 되겠지만 남북 경제협력이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얼마나 더 발전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했습니다.
서울의 목용재 기자가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을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목용재 : 차관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3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됐습니다. 판문점 선언과 비교했을 때 남북이 비핵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 차이점인데요. 남북 간의 비핵화 합의,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천식 :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봐야죠. 지난 판문점 선언에서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만 합의했는데 이번엔 구체적으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하면 영변 핵시설들을 해체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진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핵문제에 대해서 본질적인 내용들은 아직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최고위급 회담이기 때문에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기대할 수 있었는데 결과는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 핵물질, 핵물질을 생산하는 핵시설, 핵 연구기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방향조차 안 나왔습니다. 핵시설, 물질, 무기 등의 동결과 사찰, 폐기, 검증하는 전반적인 절차가 아직도 불투명합니다. 결국 근본적인 비핵화 논의는 무기한 지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목용재 : 양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에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든다'라는 문구를 명시했는데요.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김천식 : 말 그대로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거죠. 한국은 1991년 나온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어떤 핵무기도 생산한 적이 없고 핵무기도 반입한 적이 없습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 생산했고 이를 보유해 실전배치까지 했다고 얘기합니다.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 터전을 만들자는 북한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서 모든 핵시설을 폐기해야 합니다. 우선 이렇게 합의를 했으니 그렇게 되길 기대하면서 두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북한은 과거에도 이런 합의를 한 뒤 지키지 않은 바 있습니다.
목용재 :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영구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 때와는 다르게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땅을 만들기로 했다고 자신이 직접 밝히기도 했고요.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천식 : 김 위원장이 직접 핵무기, 핵위협이 없는 땅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북한의 지도자들은 핵을 개발할 의사가 없고 비핵화하겠다고 얘기를 하면서도 비밀리에 핵을 개발을 했죠. 비핵화 합의도 여러 차례 한 바 있습니다. 1991년 남북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1994년 미북 제네바기본합의,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 등이 모두 한반도를 비핵화시키기로 한 합의입니다. 북한이 이런 합의를 폐기하고 핵을 개발한 것이 현실이죠.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직접적인 행동이 없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이 핵활동을 중단한 징후는 없다고 최근 밝힌 바 있습니다. 비핵화와 관련된 진정성이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겁니다. 북한은 앞으로 실질적인 비핵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용재 : '판문점 선언 군사분야 이행 합의서'도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됐습니다. 향후 비무장지대(DMZ)와 공동경비구역(JSA) 등을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질 텐데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사실상의 불가침 합의라고 평가했습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봐도 될까요?
김천식 :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합의했다면 충돌 가능성은 낮아질 겁니다. 다만 그동안 군사분계선 일대의 충돌은 사실 정전협정 위반이었습니다. 이는 일종의 불가침 합의인데요. 북한은 이를 위반해 왔습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상호 불가침을 정식으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합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04년에는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비무장지대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내용을 담은 이른바 6.4합의가 있었습니다. 이 합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합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죠. 앞으로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아야 불가침 합의가 실제로 유용한 것이 될 겁니다. 판문점 선언의 후속 합의서인 군사분야 이행 합의서에도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여러 합의가 담겨 있습니다. 이 합의가 현실적으로 지켜지려면 쌍방 당국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용재 : 남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고 시범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또 우려되는 바는 무엇입니까?
김천식 : 소위 '화약고'라고 불리는 곳이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입니다. 이곳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적인 이용도 가능하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를 증명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겁니다. 다만 그동안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아 서해에서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져 왔습니다. 평화수역과 시범 공동어로구역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그 경계선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을 존중하기로 한 바 있지만 북한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수역이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목용재 : 평양공동선언을 보면 향후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 같습니다. 향후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천식 : 평양공동선언 2항이 남북 경제협력을 규정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3항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이 담겨 있습니다. 4항은 사회문화 교류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경제 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국제제재가 풀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독자적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하긴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비핵화의 진전과 연계돼 있다고 판단하는 게 좋습니다. 비핵화와 연계되지 않는 사안은 이산가족상봉, 사회문화 교류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선 관련 사업들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남북간 경제 교류, 인도적 대북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산가족 문제, 사회문화 교류가 얼마나 활발하게 진전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 있습니다. 우선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안이니 기대해 볼만한 일입니다.
목용재 : 김정은 위원장이 방한을 약속한 점에 대해서도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천식 :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최초로 서울 방문을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6.15공동선언 당시에도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서울을 가겠다고 천명한 바 있는데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한다는 의미는 남북관계가 상당히 진전됐다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방문이 실현되는 상황과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남북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