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④: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검증장치 없는 비핵화 합의는 무의미”

0:00 / 0:00

앵커 : 연이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대화국면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중대 전환점을 맞은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고 북핵 해법을 진단해보는 기획 보도를 네 차례에 걸쳐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과 함께 북핵 문제의 해법을 진단합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RFA PHOTO)

전성훈 전 원장은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더라도 검증장치 없는 합의는 무의미하다며 합의문에 구체적인 검증조항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이 진정으로 핵폐기 의지가 있다면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 사찰을 위해 북한 전역을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성훈 전 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동결 수준에서 북한과 빅딜에 나설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서울의 노재완 기자가 전성훈 전 원장을 직접 만났습니다.

-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한미동맹 와해 의도

- 미, ICBM 동결 수준에서 북한과 빅딜 가능성 낮아

-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 위협은 북한에 대한 강력 경고

노재완 : 원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밝혔듯이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한 단계적 방식에 따른 비핵화 방안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는 미국과 한국의 입장과는 다른 겁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전성훈 :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북한 비핵화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중요한 건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여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비핵화라는 똑같은 모자를 썼지만 모자를 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과거 90년대 논의됐던 한반도 비핵화 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주한미군 철수, 핵무기가 동원되는 군사훈련 중지, 그리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함정과 함선의 한반도 영해 출입 금지 등을 통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북한은 그것을 비핵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는 근본적으로 북한의 핵폐기입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재완 :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내정자의 경우 비핵화 협상 시간을 최대한 줄이겠다며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원장님께서는 리비아식 해법이 현실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성훈 :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인 리비아식 해법은 짧은 시간에 협상해서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드러내고 폐기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중국 방문에서 단계적이고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비핵화 방식을 놓고 북한과 미국이 여전히 입장차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재완 :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 선거를 앞두고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자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유예 수준에서 북한과 빅딜, 협상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전성훈 :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 본토의 위협을 막는 수준에서 ICBM 동결 내지는 폐기 정도에서 합의가 이뤄질 거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저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서 존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는 이란 핵합의를 상당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비핵화 단계에 맞춰 적절한 보상을 약속하는 이란 핵합의는 저농축 핵프로그램은 그대로 둔 채 고농축 핵프로그램만 없앴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 그런 수준의 합의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5월 12일까지 이란이 양보하지 않으면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비판적으로 평가했던 이란식 해법도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적용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볼 수 있는데요. 이 경우 북한은 미국과의 핵 협상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북한, 검증시 북한 전역에 IAEA 사찰 허용해야

- 검증장치 없는 비핵화 합의는 무의미…합의문에 검증장치 조항도 넣어야

노재완 : 향후 북핵 협상의 관건은 결국 '비핵화 검증'에 있다고 봐야 할텐데요. 비핵화 검증의 첫 단계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전성훈 : 검증은 합의 사항을 잘 이행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인데요. 북한과 같은 폐쇄된 사회는 외부에서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검증 자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인데요. 북한이 진정 핵폐기에 나설 의지가 있으면 핵폐기에 버금가는 수준의 개혁과 개방이 동반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핵폐기 검증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노재완 : 미국은 북한에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증 방식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요?

전성훈 : CVID에 합의가 이뤄진다면 사실상 북한은 국제사회의 핵사찰 요원들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전 국토를 열어놔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범위와 수준에서 CVID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개방이 필요하다는 말씀 드린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노재완 : 과거 북한과의 합의 중 비핵화 검증과 관련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항이 있을까요?

전성훈 : 미북 간의 비핵화 합의만 이뤄지면 일단 성공했다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요. 아무리 합의가 잘 돼도 검증 장치가 갖춰지지 않으면 그 합의는 무의미합니다. 예컨대 남북은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을 체결하고 이것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핵통제공동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핵통제공동위원회를 통해 검증 조항을 별도로 논의하려고 했던 것인데 거기서 그만 협상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비핵화공동선언도 휴지조각이 됐죠.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CVID에 합의가 이뤄지면 검증 장치도 같이 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합의문 작성 때부터 합의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검증 장치를 문구에 넣고 싸인을 해야 합니다.

- 트럼프, 김정은 핵포기 의지 확인 뒤 행동 보여야 경제-외교관계 개선 나설 것

- 미국, 협상 실패시 군사옵션 택할수도

노재완 :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는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라는 점에서 북한이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미국이 비핵화를 대가로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성훈 : 새로 임명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에 따르면 미국은 비핵화를 대가로 먼저 북한에 보상하는 일은 없습니다. 볼턴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아 회담하는 것 자체가 큰 보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핵 문제는 지난 27년 동안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북한이 조금 양보하면 미국이 거기에 맞춰 보상하고 그러다가 정체되면 북한은 도발했습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는 끊겠다는 게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입니다. 저는 트럼프 정부가 이번에 보상을 생각하면서 미북 정상회담에 임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리 없겠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확실하게 핵포기 의지를 밝히고 행동에 착수하게 되면 그때는 미국이 점진적으로 경제제재 해제와 외교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또 다시 어중간한 합의를 하고 거기에 상응한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북한의 큰 오산입니다.

노재완 : 만약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요구에 북한이 선 체제보장, 후 비핵화를 요구한다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전성훈 : 미국은 북한이 그러한 요구를 하면 받지 않을 겁니다. 북한의 체제보장은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로 클린턴과 부시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의 체제보장을 이미 약속했습니다. 문서로도 북한을 침공하지 않고 북한을 위협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도 마찬가집니다. 지난해 매티스 국방장관과 틸러슨 국무장관이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북한에 대해 체체위협을 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이 이상 어떻게 더 체제보장을 해주냐며 반문하고 싶을 겁니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완전히 핵폐기를 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관계개선을 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태입니다.

노재완 : 북한이 핵폐기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성훈 : 북한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해서 여러 가지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대가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국제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지 않습니까. 유럽에서는 미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지역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강화하려고 할 겁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떠나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하려고 할 겁니다.

노재완 : 마지막으로 미북 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전성훈 : 지금으로선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회담이 열렸을 때 북한이 핵포기 의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볼턴이 말한 대로 협상이 길게 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정상회담은 외교적 프로세스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는 곧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더 이상 외교적 해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경우 남은 방법은 북한이 핵개발을 하도록 놔둔 채 대응하거나 아니면 코피 전략 등 군사적 옵션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북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한반도에서 제한적이나마 국지적 차원에서라도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됩니다.

노재완 : 네, 잘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이었습니다. 원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전성훈 : 감사합니다.

앵커 :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과 함께 북핵 해법을 진단해보았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